그러나 설문에 응한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중 70%는 정부부처 간 정책조정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중 3분의2 이상이 노무현 대통령의 리더십과 외교안보정책팀 내의 보혁갈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평가가 전문가 집단의 보수성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자신을 진보로 분류하는 전문가들(전체 응답자의 21%) 중 89%도 부처 간 정책조정에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50%는 대통령의 리더십과 외교안보정책팀 내의 보혁갈등이 조정실패의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부분은, 누가 지난 1년 동안 노무현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느냐는 질문에 61%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꼽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5%가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을, 9%가 라종일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들었다는 사실과 대비된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은 권한을 집중해선 안될 곳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한 권한은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돼 있는 정부부처에 주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한없이 책임만 떠맡는 정부부처가 달가워할 리 없다. 미국과 어렵게 마련한 정책안을 협상의 장에 참여하지 않은 청와대 내 참모기구가 견제하는 상황은 더더욱 간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을 둘러싼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정부 내에 의견 차이가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국방부와 국무부가 사사건건 충돌하며, 백악관 내의 NSC는 그들 간에 다리를 놓기에 분주하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NSC가 국방부와 외교부 간의 갈등을 중재하기보다 오히려 양자와 충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2004년에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이 순항하려면 NSC의 역할이 중요하다. NSC는 자기 나름의 정책안을 가지고 국방부와 외교통상부에 영향을 미치려 하기보다는 본연의 역할인 조정에 충실해야 한다.
김병국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