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주부통신>34.일본의 새해맞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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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일본의 12월은 사주(師走),「시와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한다.항상 의젓하고 느긋한 스승도 뛴다는 뜻으로 12월의 분주함을 의미한다.이 시기의 주부는 머리빗질을 못하고 있어도 흉을봐서는 안된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12월은 모 든 일을 정리하고 산뜻하게 새해를 맞이하겠다는,정신적으로도 하나의 매듭을 지으려는 시기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설은 조상의 영(靈)과 농경신(農耕神)이 복합화된 존재인 연신(年神.도시가미)을 맞이하는 날인데 이 의식을 위해 2주일에 걸친 준비를 해왔다.예부터 12월13일이 설맞이 준비 개시일에 해당되는데 궁중에서도 아궁이 를 청소하고새로 불을 지폈다고 한다.즉 새 신(神)을 맞기 위한 준비가 대청소라는 형태로 새해맞이의 상징적인 한 부분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된 것이라고 하겠다.
대대적인 청소 후에는 새해 음식 장만.제대로 격식을 차려 준비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일반 가정에서는 1단에서 3단 정도의 칠기 도시락에 산해진미를 보기 좋게 장식한다.
요리 하나하나에 건강과 장수.근면등 여러 염원을 깃들여 마련하는데 옛날에는 1월1일부터 사나흘 요리를 안해도 되도록 보존식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어 3일씩 계속해서 설 음식이 상에 오르는 가정은 무척 줄었다.백화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설 음식을 주문하는 가정도 늘고 있는데 1만엔(약 8만원정도) 안팎에서 3만엔 정도가 일반적이고 내용은 일식.양식.중국식등 다채롭다.모든 준비를 마치고 12월31일 저녁부터는 완전 휴식.
밤늦게 먹어두면 새해 운이 좋다는 도시코시 소바,해넘기기 국수를 먹고 NHK가요 청백전을 보면서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전형적인 일반가정의 모습이다.
드디어 새해.1월1일 새벽부터 신사참배가 시작된다.우리에게 쓴 기억을 남긴 신사참배도 요즘 일본인들에게는 그다지 종교적 의식은 없는 것 같다.일본의 많은 신사가 일반 주택가나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마치 한국에서 교회가 시내 여기저 기 있듯 무척 가까운 존재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생활 속에 용해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일본의 연말이 바쁜 또 하나의 이유는 연하장 작성인 것 같다.일본 우정성 발표에 따르면 한 가정에서 보내는 연하장 수는 90.8장에 이른다.12월20일께까지 우체국에 내면 1월1일 아침 일제히 각 가정에 한 뭉치씩 배달된다.받은 연하장을 읽고가족끼리 품평회를 여는 것도 설 행사의 하나다.
가족 관계가 다양해지고 자신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국외 탈출 가족도 증가하고 있다.엔화 강세도 한몫해 12월부터 1월 초까지 해외 여행자는 50만명에 달할 전망이다.물론 국내 온천장도 가족들로 붐빈다.그래 서 텅빈 연초의 도쿄(東京) 시내는 실로 조용하고 쾌적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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