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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눈>압축성장의 비싼 대가 교훈삼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인명재천(人命在天)은 옛말이다.인명 재차(在車)다.아니 인명재교(在橋)다.
고급승용차 때문에 지존파일당의 표적이 된 중소기업인 부부의 기막힌 사연에 이어 출근길 다리붕괴 사고로 날벼락을 맞은 이웃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자조의 농담들을 나누었다.
뒤이은 가스폭발 참사는 또 무고한 인명을 12명이나 앗아갔으니 이제 인명은 재지(在地)에 이른 셈인가.
신문을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한다면 올 한해 신문 사회면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을 우리는 차마 바로보기 어렵다.너무 일그러지고 추한 몰골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본모습은 아닐 망정 현재의 모습인 것은 틀림없다.
참으로 별난 일들이 많았다.
「희대」「엽기」「신종」등의 수식어들이 자연스럽게 따른 사건.
사고의「연쇄폭발」앞에서 시민들은 충격과 개탄과 분노를 되풀이하다 끝내는 좌절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낙동강 식수오염.상문고 비리.조계사폭력.탁명환씨 피살.농안법파동.상무대이전 비리.박한상 패륜살인.철도파업등 상반기에 일어난 대형사건들은 하반기들어 터진 주사파 파동.지존파.온보현.증인 보복살해.성수대교붕괴.충주호유람선화재.세도(稅 盜)수사.아현동 도시가스폭발등에 묻혀 이제 기억조차 가물가물해졌을 만큼 한해 내내 사건과 사고가 꼬리를 물었다.언제 어디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시민들은 불안하고 그러면서도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막막하다.
이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해 규정짓기는 어렵다.
굳이 말한다면「총체적 부실이 불러온 총체적 위기」라고나 할 수밖에 없다.
일련의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추구해온 공동체의 목표와 국가경영전략.사회관리시스템은이제 한계에 부닥쳤다.근본으로부터의 개혁을 단행해야만 할 때가됐다. 일제의 식민유산을 정리하지 못한채 분단의 한계를 안고 군부의 권위주의 리더십에 이끌려 경제지상주의로 내달려온 길게는반세기,짧게는 30여년 역사의 중간결산을 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다다른 것이다.
돌이켜보면『잘살아 보자』는 한마디 구호로 축약된 최근 30여년 우리사회의 역정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성장과 효율에만 집착해 사람도,과정도,원칙도,도덕률도 아무렇지 않게 무시해온 파행과 변칙의 과정이기도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압축성장의 부작용에 뒤늦게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 셈이다.역사발전에 비약은 없다는 교훈이다.
총체적 위기에 대한 대응은 총체적 반성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총체적 부실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말아야한다.정치도,행정도,교육도,산업도 새로운 문명과 사회환경에 맞게 패러다임의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너무 많은 사건들을 통해 얻은 교훈을 우리는 실천전략으로 구체화해야 할 때다.이는 많은 부분 정부의 몫이지만 시민의 역할도 매우 크다.이점에서 큰 사건에 묻히기는 했지만 올 한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의미있는 변화들에도 눈길을 돌 릴 필요가 있다. 이른바 X세대로 일컬어지는 젊은세대와 기성세대간 상호이해의 움직임,노사관계의 인식변화,외국인근로자 문제등을 통한 시민들의 국제시민 의식향상,환경.소비자운동의 발전등이 그런 것들이다.특히 中央日報의 집중 캠페인을 계기로 불붙은 자원 봉사 참여열기는 앞으로 열릴 시민사회의 방향과 관련해 역사적 의미를부여받아야 할 것이다.
광복 50년 새해는 바로 이런 새로운 사회의 첫 해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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