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적으로 박은 말뚝 어떻게 뽑느냐가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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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3층 회의실에서 '이렇게 경제를 살리자'란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현오석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권홍사 대한건설협회 회장, 김정수 중앙일보 경제전문기자,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사진=김성룡 기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직후에도 "경제, 반드시 살리겠다"고 거듭 약속했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자신감과는 달리 한국 경제를 둘러싼 여건이 썩 좋지만은 않다. 성장 엔진이 꺼져 가면서 경제 성장률은 정체되고 있다. 투자가 줄면서 일자리도 부족하다. 게다가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도 지속되고 있다. 이에 중앙일보는 '이렇게 경제를 살리자'란 주제로 재계.학계 전문가들이 참석한 좌담회를 열어 새 정부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경제 관련 현안을 점검하고, 얽힌 실타래를 풀어갈 묘안을 모색해 봤다.

▶김정수(사회)=이 당선자가 약속한 연 7%의 경제 성장이 가능한가.

▶이인실=우리 경제의 현실을 감안하면 7%의 경제 성장률은 절대 쉽지 않다. 7% 달성을 위해선 경제 체제가 바뀌어야 하지만 이를 위해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조급한 기대를 갖기보다는 준비 기간 동안 참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김종석=7% 경제 성장은 가능하다. 문제는 물가 불안이나 경기 과열과 같은 부작용 없이 고성장을 이루려면 공급 능력이나 생산성 향상과 같은 공급 측면에서의 성장 확대 정책이 필요하다.

▶현오석=7% 성장을 단기 목표로 생각하지 말고 잠재 성장률을 그 정도 수준으로 높인다고 생각하면 보다 쉽다. 시간을 가지고 경제 체질, 경제 운영 방식을 바꾸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회=경제체질을 바꾸려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 오히려 첫 몇 개월 사이에 체질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지 그 시기를 놓치면 기회가 다시 오기는 어렵지 않은가.

▶현=물론이다. 체질을 바꾸는 시도는 처음부터 시작돼야 한다. 다만 조급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권홍사=지금 정부의 일관성 없는 부동산 정책으로 건설 시장은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국내총생산(GDP)에서 8.0%를 차지하는 건설 산업이 망가져선 국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방에 가 봐라. 일이 없어 놀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국내 건설 경기를 되살릴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

▶사회=그렇다면 지금 단계에서 주택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이=종부세.양도세를 높게 부과하면서 부동산 거래가 마비됐다. 문제는 이로 인해 실질적인 피해를 보는 계층이 서민이란 사실이다. 양도세를 포함한 거래세를 지금보다 파격적으로 낮춰야 한다. 하지만 재건축 규제와 같은 정책을 빠른 속도로 완화할 경우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완급을 조절할 필요는 있다.

▶김=현재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 문제는 전형적인 관치 경제의 폐단을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지금의 세금 구조는 납세자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의도로 도입된 것이다. 또 부동산뿐 아니라 지금 정부가 악의적으로 박아둔 말뚝을 어떻게 뽑아낼 것인지가 차기 정부의 과제가 될 것이다.

▶사회=어떤 게 말뚝이라고 보나.

▶김=종부세를 거둬서 낙후 지역에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종부세가 문제가 있다고 당장 이를 없앨 수 있겠느냐. 그러니까 종부세가 말뚝인 셈이다. 혁신도시 등 각종 개발계획도 차기 정부가 물려 받을 말뚝이라 볼 수 있다.

▶권=아파트 분양자에게 10년 동안 집을 팔지 못하게 한 것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조치다. 이런 말뚝은 빼야 한다.

▶김=노무현 대통령이 "하늘이 무너져도 집값은 잡겠다"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정책이 논리와 이성이 아닌 이념과 감정에 근거했기에 실패는 예정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분양가 상한제나 원가 공개를 당장 없애자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는 만들지 않아도 될 법을 많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주사 한 대면 될 것을 세 번, 네 번 놓는 바람에 환자의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중소 건설사들은 다 망한다.

▶사회=어떻게 하면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 일자리를 늘릴 수 있겠나.

▶김=수출보다는 내수 중심의 투자가 확대돼야만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다. 이를 위해선 각종 규제가 철폐돼야 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규제 등 대기업 관련 규제만 풀어도 향후 2년간 50조원의 투자 여력이 생긴다. 우리 경제가 능력이 없어 저성장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균형발전, 대기업 규제 등 우리 스스로 족쇄를 채워 놨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생긴 것이다.

▶사회=일자리가 어느 정도 생겨야 하나.

▶김=정부는 내년 30만~4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만 누적된 실업까지 해소하려면 적어도 50만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선 민간의 소비가 늘어야 하는데 이를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기업의 투자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현=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개선하는 게 핵심이다. 지난 10년간 기업 환경이 나빠진 것은 기업과 근로자를 서로 적대적 관계로 봤기 때문이다. 약한 근로자를 상대로 기업이 공정하지 못한 게임을 하기 때문에 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런 인식부터 바뀌어야만 기업 환경이 개선된다.

▶이=최근 들어 한 해에 새로 생기는 일자리가 30만 개를 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를 많이 만들기 위해선 서비스, 특히 금융서비스가 커져야 한다. 금융 산업의 외형은 많이 커졌지만 정말 경쟁력이 있고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는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금융과 산업의 분리 원칙(금산 분리)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사회=금융 산업의 경쟁력이 빨리 커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뭔가. 또 금산 분리 원칙은 어떻게 해야 하나.

▶권=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사업을 해 보니 우리의 금융 수준이 아직 많이 떨어진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개발 사업과 관련된 금융 기법은 우리가 많이 뒤떨어지는 것 같다. 금융 산업이 해외 진출을 활발히 하고, 전문가가 키워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

▶현=금산 분리, 출자총액 제한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 규제를 없애 경쟁을 하게 한 뒤 폐해가 생기면 규제하면 되는 것이다. 미리 걱정하다 보니 규제의 장막이 쳐지는 것이다.

▶권=각종 규제 때문에 중국이나 베트남으로 갔던 기업들이 돈 한 푼 못 건지고 야반도주하는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이다. 그렇다고 수도권이 제대로 개발됐나. 온통 난개발이다. 실물경제를 제대로 모르는 공무원들이 고집대로 법을 만들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아닌가. 정말 '턱도 안 되는 사람들이, 턱도 안 되는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 규제를 풀어 경쟁이 심해지면 장사꾼은 자기가 죽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역대 정권 치고 기업 활동을 억제하겠다고 한 정부는 없다. 노무현 정부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다 알면서도 규제를 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정부 조직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이=대(對)부처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장관 직에 해당하는 조직이 48개나 되는데 이를 10여 개 정도로 줄여야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있는데 우리만 거꾸로 가고 있다. 일자리 창출 정책만 하더라도 거의 모든 부처가 같은 일을 하다 보니 중복과 효율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권=공무원이 소신껏 일을 못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감독기관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무원이 눈치 보느라 결정을 못 내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기업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김=공무원은 기획 기능을 담당하고, 나머지는 외주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 우정사업이나 토지공사.주택공사가 하는 일에 무슨 국가관리가 필요한가. 금융감독을 담당하는 금융감독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통합한 뒤 민간 자율기구로 만들어야 한다.

▶현=이미 정부는 업부의 상당 부분을 아웃소싱하고 있다. 따라서 국회가 법을 통해서 정부 조직의 군살을 빼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김=정부조직 개편이 중요하지만 취임 초기엔 현안이 많다. 자칫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하지만 취임 초기에 조직 개편에 손을 대지 않으면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사회=비정규직 차별과 같은 노동시장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

▶김=사람이 귀해지면 기업에 근로자를 차별하라고 해도 안 한다. 당연히 비정규직도 안 쓴다. 지금은 사람이 남는데 법으로 비정규직 채용을 금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결국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사람이 귀해지도록 해야 한다.

▶현=고용의 유연성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쉽게 해고할 수 있다면 굳이 비정규직보다는 정규직을 채용하려 하지 않겠는가. 결국 고용의 유연성이 근로자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김=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우리의 법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하다. 완화가 필요하다. 또 프랑스에서 도입하려다 실패했던 '29세 미만을 고용했을 때 3년 뒤 고용 자동연장 의무가 없다'는 정책을 도입하면 그것만으로도 청년실업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그동안 사측의 잘못도 많다. 고용에 관한 한 사측의 전향적인 대타협도 필요하다.

▶사회=노무현 정부가 추진해 온 국토균형발전 계획은 수정돼야 하나. 상당 부분은 이미 시작됐는데 멈추게 할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김=전국을 세 개 광역권으로 나눠 권역 안에서 자체 균형개발을 추진하는 전략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지금이라도 중단할 수 있는 사업은 중단하는 게 바람직하다. 행정중심 복합도시도 수도의 이전이 아닌 과학도시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현=지역균형발전도 필요하다. 다만 전체 계획을 다시 점검해 중단했을 때의 비용과 계속 진행했을 때의 비용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정리=김준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MB노믹스=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향후 펼칠 경제 정책을 말한다. 기업 투자를 늘리고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내용이 핵심이다. MB는 이 당선자의 영문 이니셜이고 노믹스는 이코노믹스의 준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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