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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연금 개혁안, 완전히 새로 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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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당선자의 연금 개혁 공약에서는 개혁 의지를 찾기 어렵다. 네거티브 선거판에서 정책 토론이 제대로 되지 않는 분위기를 이용해 이 당선자 캠프는 나라의 장래를 바로 세우는 연금 개혁안을 내놓기보다 유권자의 표를 얻기 위한 인기 영합주의로 일관했다. 당선자는 공무원·군인·사학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은 개혁안 자체를 내놓지 않았다. 개혁하는 척 시늉을 내 본 국민연금 개혁안은 실제론 ‘개악’ 안이요, 미래 세대를 골병들게 하는 ‘재앙’ 안이다. 당선자의 연금 개혁 공약은 이렇다. 국민연금은 기초노령연금과 통합해 운영한다. 기초노령연금은 노인 80%에게 평균소득의 20%(약 34만원)를 지급하는 기초연금으로 바꾼다. 현재는 노인의 60%에게 월 최고 8만4000원씩 지급하고 있다. 기초연금에 드는 돈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한다. 현재 ‘덜 내고 더 받는’ 성격의 국민연금은 평균 소득의 20%를 ‘낸 만큼 받는’ 소득비례연금으로 성격을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 안대로라면 기초연금은 2010년 20조원, 2030년에 46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털어 가야 한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기초노령연금에 드는 2조300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는 데도 현 정부는 땀을 뻘뻘 흘렸다. 그러니 기초연금이 시행되면 국가 재정이 휘청거리다 못해 거덜나게 생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기초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연금 사각지대 비율은 일부 정치인에 의해 침소봉대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시장 원리를 중시한다는 우파 보수정권이 국민 세금을 털어 모든 국민에게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도 이 당선자는 재고해 봐야 한다.

재원이 바닥나 이미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 주고 있는 공무원·군인연금의 개혁은 국민연금 개혁보다 더 시급하다. 당선자는 공무원과 군인의 반발을 감수하고 공무원·군인연금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곧 발족될 인수위는 연금개혁 공약을 아예 없었던 일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연금 개혁안을 내놓길 바란다.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한 약속을 백지화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다. 하지만 이대로 눈감고 가면 나라의 장래를 잃는, 더 큰 문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당선자는 국민에게 정직하게 밝히고 사과한 뒤 국민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라. 그리고 새 정부 초기 연금 개혁안을 밀어붙여라.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진정으로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리더십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