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렬대표 '해고' 냐 '명퇴' 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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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가 자택을 나서며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당 소장파 의원들로부터 퇴진요구를 받고 있는 崔대표는 이날 당사에 나오지 않고 강원도 모처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겨레신문 제공]

한나라당은 어디로 가는가. 최병렬 대표가 퇴진을 거부한 채 장고(長考)에 들어간 가운데 반최(反崔.반최병렬)와 친최(親崔) 세력은 치열한 대세장악 싸움을 벌이고 있다. 내분은 갈수록 악화하는 양상이다.

'반최'세력은 동조 의원들의 당직 사퇴 등으로 당 기능을 마비시키면서 崔대표에 대한 퇴진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새 지도부 구성을 위한 임시 전당대회 소집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친최' 측의 저항도 만만찮다. 조기 전당대회와 崔대표의 퇴진을 반대하며 세를 규합하고 있다.

崔대표의 역할을 축소하되 선대위를 출범시켜 새 출발을 하면 된다는 게 '친최' 측의 주장이다. 문제는 민심이다. 崔대표가 조만간 발표할 입장이 민심과 유리되는 것이면 한나라당은 다시 혼란과 진통을 겪을 것이다. 한나라당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느냐에 따라 총선의 흐름도 달라질지 모른다. 여권이 한나라당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 反최병렬 진영…사퇴 기정 사실화…全大 추진

'반최(反崔) 구당모임'의 행보는 19일에도 계속됐다.

崔대표 퇴진론에 불을 지핀 이재오.맹형규.남경필.원희룡 의원 등 30여명은 국회에서 모임을 열고 새 지도부 구성 방안 등을 논의했다. 모임에는 김형오.박세환 의원 등 영남권 일부 의원과 이규택.강인섭 의원 등 수도권 중진들까지 가세했다.

대변인으로 정해진 권영세 의원은 "당내에 조속히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면서 "의원총회 등에서 공론화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崔대표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이후의 당 정비 프로그램을 작동시키겠다는 의미다.

구당모임은 지지세력 확대를 위해 영남권 의원들이 주장하는 崔대표의 명예로운 퇴진 방안에 대해선 전날과 달리 온건한 입장을 정리했다. 權의원은 "崔대표의 사퇴는 이미 정치적으로 결판이 났다"며 "언제.어떻게 물러나느냐는 법적 문제에 대해선 다소 시간 여유를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구당모임이 숨고르기에 들어간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그러나 구당모임 측 한 의원은 "우리의 목적은 崔대표의 사퇴가 끝이 아니다"며 "당 주도세력을 교체해 4.15총선에 새 간판으로 임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원희룡 의원은 "앞으로 한나라당 재창당 운동으로 활동을 확대할 것"이라며 "합리적 보수세력의 구심역할을 하기 위해 당 밖의 양심세력과 국가원로들도 방문해 우리의 뜻을 알리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다음달 15일을 임시 전당대회 개최일로 잡고 당헌.당규 검토작업에도 착수했다.

구당모임과 별도로 이날 밤 경기도 의원들을 비롯해 지역별 의원 회동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이들의 공통 결론도 "崔대표 체제로는 안 된다"로 모아졌다. 하지만 활동이 본격화하면서 구당모임 내부에선 감춰뒀던 고민이 하나 둘 돌출하고 있다.

한 의원은 "崔대표 사퇴 후 누구를 세우느냐를 놓고 생각이 제각각"이라고 토로했다.

박승희 기자

*** 親최병렬 진영…강원도 간 崔대표 "할말 없다"

19일 오전 8시 아파트를 나온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는 여느 때처럼 검은색 세단에 올랐다. 그러나 행선지는 여의도 당사가 아닌 강원도 모처였다. 부인도 대동했다. 자신의 거취를 포함, 당내 수습책을 놓고 1박2일의 장고에 들어간 것이다. 퇴진 압력에 시달린 탓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선지 그는 '언제 입장을 밝힐 것이냐'는 보도진의 질문 공세에도 "할 말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런 표면적인 침묵과 달리 崔대표는 막후에선 자신의 구명을 위해 혼신을 쏟았다. 그는 이날 오전 5시부터 여러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고 한다. 한 의원에 따르면 崔대표는 "총선을 두 달도 안 남긴 상황에서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崔대표 측은 '반최(反崔)' 진영이 주장하는 조기 전당대회안 대신 선대위 조기 출범을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선대위에 당권을 몰아주고 현 지도부의 명맥은 유지하자는 얘기다. 대표직을 빼앗기는 수모는 면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천심사위원인 소설가 이문열씨에게 선대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는 소문이 당내에 퍼졌다. 李씨가 수락 시기를 崔대표와 조율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반최' 강경파에 맞선 당내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우선 홍사덕 총무와 이상득 총장 등 당 지도부가 구명에 나섰다. 洪총무는 "지금 당 지도부를 교체하는 건 총선 승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李총장도 "崔대표가 스스로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전당대회 소집에 거부감을 표시했다.

崔대표의 처지에 동정적인 김용갑.이방호.윤한도.신영국 의원 등 영남권 의원 35명도 이날 낮 모였다. 일부는 반최 강경파와 같이 가급적 빨리 전당대회를 열어 지도부를 바꾸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에 반대했다. "崔대표가 명예롭게 물러날 수 있는 시간을 주자"는 게 대세였다고 한다.

남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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