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으며생각하며>10.이상향설계 환경그룹이끄는 郭英薰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경(書經)은 유교(儒敎)정치의 이상(理想)을 기술한 책이다.최고의 정치이상에는 신성(神聖)이 자욱히 깔려 있어야 한다고생각해서 그 필요 때문에 그랬던지 이 책은 유교정치의 중심 이상이 신화(神話)시대인 요(堯).순(舜).우(禹 )세 임금 때에 이미 확립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이 세 임금이 실재했다고볼 역사적 근거는 아주 없다.아마 동그마니 추상적인 이상만 기술하기 보다는 현실감을 주기 위해 인성화된 배역을 덧붙여주자고만들어낸 것이 이 세 임금인지도 모른다.
이런 신화적 상고 시대에도 정치의 가장 큰 숙제는 경제적인 문제였다.치수(治水)가 그것이다.치수를 국가의 최대 프로젝트로삼은 왕은 저 위대한 효자로 이름 난 舜임금이었다.그는 이 초거대.초시대 프로젝트의 주연(主演)배역에 장차 자기의 왕위를 선양(禪讓)받게 될 신하인 禹임금을 캐스트한다.『오시오 禹여,홍수가 나를 경계함에 믿음으로 공을 이룰 것은 오직 그대의 현명함이오(來禹 洪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라는 말로 반기면서.
태고적 중국의 舜임금을 경계한 재앙이 홍수 때문에 범람하는 강이었다면 이 시대 한국 국민을 경계하고 있는 재앙은 무엇인가.재앙의 제목과 프로젝트의 제목은 동일할 수 밖에 없다.내가 보기로 한국의 재앙은 소득의 증가와 세계 최고의 인구 밀도 때문에 범람하고 있는「도시(都市)」다.이 범람은 범죄.폭력.교통마비.대교(大橋)붕괴.가스폭발의 형태를 가지고 수시 수처(隨時隨處)로 나타난다.강우(降雨)는 축복이지만 홍수는 재앙이다.잘건설되고 잘 운영되는 도시는 꿈이 지만 잘 못 건설되고 잘못 운영되는 도시는 혼란의 악몽이다.
나는 곽영훈(郭英薰)박사를 찾아가 그의말을 듣는다.그는 홍익대학교 도시계획학과 교수직을 지냈고 지금은 스스로「환경그룹」이란 이름의 주식회사 형태를 가진 연구원을 설립해 회장직을 맡아활약하고 있다.잠깐,그를 효율적으로 소개하려면 그의 학력을 적는 것이 좋을듯 하다.서울종로국민학교,경기중고등학교,미국MIT대학교 건축공학사,하버드대학교 정치학.교육학 석사,동국대학교 교육철학 박사다.옛날 육기(陸機)가 한고조(漢高祖)의 공신(功臣)들을 칭송하는 시(詩)에서 한신 (韓信)을 책출무방(策出無方.종잡을 수 없이 계책이 튀어 나옴)이라고 높였거니와 곽영훈씨의 학력을 보면 예기(禮記)에 쓴대로 박학무방(博學無方.널리공부하여 한군데 매인 바가 없음)의 공부를 했다고 보겠다.
최근 그는 신공항이 들어서는 영종도와 그 부근에 건설할 세계시민을 위한,세계적 수준의,세계의 동서남북을 잇는 정보와 교통의 중심지로서의「영종도 세계시(World City)」계획안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바 있다.얼마나 웅장하고 반가 운 아이디어인가. 『공업화시대는 모든 것이 규격화 되어야 했고 대체가능한것이어야 했습니다.사람도 볼트 너트처럼 바꿔 낄 수 있는 사람으로만 길러 내려고 했습니다.공업적 부품만을 생각했지요.박사가아니라「침사(針士)」였어요.지금은 도구적 지성으로는 문제해결이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도시의 신호체계만해도 이런「침사」가 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토지이용에 관한 광범한 지혜가 신호체계를 푸는 전제가 되니까요.대체가능을 요구하는 것이 산업화 사회라면 정보화 사회는「부동(不同 )」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그럴지도 모른다.공자(孔子)는 「군자는 협력하되 똑 같지 않고(和而不同)소인은 똑 같으면서 협력할 줄 모른다(同而不和)」고 했다.곽영훈씨는「산업시대는 소인의 시대였고 정보시대는군자의 시대가 된다」라고 주장하는 것일까.
『나는「세인환래(世人環來)」적 사고를 주장합니다.세계(World).인간(Human).환경(Environment).미래(Future)를 약자(略字)화한 것이 세인환래입니다.영문자로는 WHEF라고 합니다.어떤 사고도 일단 전세계를 총 괄한 것이 아니어서는 안됩니다.거기에는 반드시 인간과 환경이 주인으로서 고려되어야 합니다.그것이 포괄하는 시간의 기준은 먼 미래까지 뻗쳐 있어야 합니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니 웃음이 났다.이50대 사나이가 퍽이나 동양적이라는 점을 느꼈던 것이다.그는 이름을 의미 깊게 붙이기를 좋아한다.그리고는 자기가 붙인 이름의 세계 속에서 사고를 새로 펼치고 심화해 보기를 즐긴다.현실이 있으 면 거기에 명분(名分)을 병행시키지 않고는 안심을 할수 없는 것이 동양 선비의 심리다.이 사람도 그런가 보다.현실이 자기를 저버리면 명분 속으로 귀거래(歸去來)하면 된다.
그는 자기의 영종도 세계시 계획을 북(North)동(East)서(West)남(South)을 불러 모으는 평화계획이라는 뜻에서 NEWS 프로젝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이름에는 자기의 「인식론적 소원(epistemological wish)」이 담겨 있다고 내게 설명해준다.하긴 창조적인일에는 무언가 소원이 담겨 있기 마련이다.창조란 특히 우리나라풍토에서는 버림 받기 십상인 고독한 작업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것이다. ***산업기지는 臨海로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그것 안에 세가지 차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평화운동과 교육,정책의 기획,환경과 건축의 설계가 그것입니다.여기에다「세인환래」라는 꼭지점을 추가하면 하나의 정사면체(正四面體)가 만들어집니다.이정사면체야 말로 나와 환경그룹이 하는 일의 전모입니다.예를 들면 88올림픽 프로젝트는 내게 기본적으로 평화운동이었습니다.이개념은 애초에는 고 함석헌(咸錫憲)선생과의 만남에서 얻은 것입니다.대전 엑스포는 교육이 기본 개념이었습니다.』 이쯤에서 나는 그에게 하나의 의문이 떠 올랐다.고급 인력을 1백여명이나 고용하고 있다는 그의 환경그룹이란 연구원 겸 기업은 어디서 수입을 얻느냐하는 것이 그것이다.
『다시 예를 들지요.올림픽이나 엑스포에 앞에서 말한것과 같이기본 개념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대한 정책기획 내지 마스터 플랜을 짭니다.우리나라 현실에서 이 단계까지의 작업에 대하여 대가를 지불하려는 기관은 없습니다.나는 이 단계까 지의 입안(立案)을 내가 만나는 사람 누구든지 붙잡고 얘기합니다.이것은 나의 전략입니다.민들레전략이라고 이름을 붙였지요.훅 불어 사방에날려 보내자는 것입니다.어느 곳엔가 가서 그 집 마당의 민들레꽃으로 자리를 잡습니다.그 때 가서 야 나는 그 프로젝트의 타당성조사,설계와 엔지니어링등 용역 제안을 냅니다.이것을 맡게 되면 돈이 되지요.』 나는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갔다.우리나라의국토개발 차원에서 도시계획에 관한 그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우리나라는 U자형 개발을 해야 합니다.산업기지로서의 도시는모두 우리 반도의 임해지역으로 배치하는 것이 U자형 개발입니다.내륙은 물 보호가 중심이 돼야 합니다.거기는 자연과 문화를 배치해야 할 곳입니다.머리를 쓰고 몸을 쉬는 곳 이 돼야 합니다. 나는 이것을 국토계획 아닌 국력계획이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 있습니다.그 내용은 「색동저고리」프로젝트와 「달걀」프로젝트의 조합으로 이뤄집니다.
색동저고리 프로젝트란 동서교통망 체체를 지칭합니다.21세기 한반도는 세계의 중심 내지 적어도 동북아의 중심이 돼야하는 필연(必然)과 당위(當爲)속에 있습니다.천리(4백㎞)를 반경으로하는 원을 그리면 環동해 8백㎞,환황해 8백㎞의 「천리안(千里岸)」이 생깁니다.일본과 중국을 양쪽에 거머쥔 모습이기도 합니다.그래서 남북교통과 함께 동서 교통망이 중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군산 장항의 임해공단은 아산.목포와도 연결돼야 하지만 포항.울산과도 연결돼야 합니다.이것을 확장하면 영종도에서강릉까지의 연결,진남포에서 원산 까지의 연결등이 그림에 떠 오르게 됩니다.
***東西교통망 확충을 달걀 프로젝트란 행정구역과 도시 설정에 관한 것입니다.인구밀집 지역을 노른자라고 하고 농촌지역을 흰자라고 했을 때,이 둘을 같이 포함하도록 행정구역이 새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구 밀집지역은 쓰레기 버릴 곳이 없고 농촌에는 문화시설이 없게돼 국민이 도시민과 농민으로 행정구역에 의해 차별되는 것은 미래의 한국과는 맞지 않습니다.이젠 행정구역을 분수령을 기준으로 분할한다는 농업시대적 통치편리의 개념을 극복하고 분수령을 오히려 연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도(道)라는 행정구역처럼 시대착오적인 개념도 드물것입니다.행정구역개편 없이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를 해 버리면 재개발이 신개발보다 어렵듯이 나중에 심각한 문제에 봉착할 수 있습 니다.』 우리는 그 동안지방 자치제를 무서워하고 꺼리는 집권자 밑에서 살아 왔다.그러다가 이제는 법으로 박아 놓은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일이 내년 6월로 바싹 다가 오자 모든 문제는 법을 지킬 것인가,이번에도 안지킬 것인가에만 집중되고 있다 .자치제 행정구역을 郭박사가 말하는 「세인환래」기준 원칙에 맞춰 개편한다는 진짜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알지 못 하는 한쪽 구석에 팽개쳐져 있을 뿐이다. 자,이 일을 장차 무엇으로 어떻게 풀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