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인터뷰>1000승 눈앞에둔 徐奉洙 9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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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대승부사 서봉수(徐奉洙)9단이 마지막「1승」에 목이 타고 있다. 徐9단은 현재 통산9백99승.한판만 더 이기면 국내 최초로「1천승」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데 여기서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
기록을 눈앞에 두고 돌연 슬럼프에 빠진 徐9단을 26일 한국기원에서 만났다.
-지난달에 7연패한 사실을 알고 있는가.
렇게 많이 졌나.요즘엔 누구나 강하다.』 徐9단은 얼굴을 붉히며 생각에 잠겼다.
야성과 투혼의 승부사,괴기스러운 파괴력과 들풀의 생명력으로 세계를 제패한 이「야전사령관」은 풀리지않는 수수께끼에 직면한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했다.
-1천승은 일본의 사카타(坂田榮男)9단과 린하이펑(林海峯)9단 두사람만이 달성했다.사카타는 70대에,林9단은 50대에 넘어섰으니 40대 초반에 1천승에 도전하는 사람은 徐9단 뿐이다(사카타 1천1백11승,林1천7승).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 1승이 그렇게 힘든가.
『누구나 기록의 제물이 되고싶지는 않겠지.사실은 체력에 문제가 생겼다.대국중에 눈이 감기고 생각이 실처럼 끊어진다.』 항상 호탕하게 웃어넘기던 徐9단이 의외로 심각한 표정이다.그는 얼마전 심장박동기를 가슴에 달고다녔다.
돌이켜보면 2등은 필요없다는 승부세계에서 15년간「꺾이지않는2인자」로 버텨낸 徐9단의 불굴의 정신력은 어찌 보면 하나의 신화에 가깝다.
천하제일의 기재(棋才)를 인정받은 조훈현(曺薰鉉)이 이미 프로에 입문했을 때 동갑내기 서봉수는 탄피를 찾아 서울 이태원의미군부대 철조망을 넘었다.
조훈현이 일본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공부하며 이미 3단일때 그는 영등포 뒷골목에서 바둑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때가 15세.스승을 굳이 꼽자면 저잣거리의 내기바둑꾼들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재 조훈현의 10년공부를 단숨에 쫓아가 3년만에 프로가 되고,그 2년후 타이틀을 손에 넣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는 자신감 넘치는 야생의 표범이었고,일본바둑의 이론과 모양을 거부하는 본능과 육감의 승부사였다.
조훈현은 무쌍의 속력과 감각으로 한국을 장악했고,조치훈(趙治勳)은 완전을 추구하는 고뇌의 바둑으로 일본을 휩쓸었다.
전주의자 서봉수는 부족한 기술을 1백20%의 실전능력과 낭인세계 특유의 본능으로 보완하며 바둑계의 귀족들을 뒤쫓았다.
92년 그는 존경하던 조치훈을 꺾고 잉창치(應昌期)배 세계대회 결승에 올랐고,93년 일본 미학(美學)의 상징인 오타케(大竹英雄)9단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세계정상의 자리와 3억2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쥐었다.이때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 것이 바로 「심장」이었다.
오타케와의 마지막 승부는 이미 기술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배짱이 좋으냐 하는 심장싸움이었고,여기서 서봉수의 강인한 생명력이 빛을 발했다.
-그 심장에 이상이 생겼는가.
『아니다.의사의 권유로 박동을 테스트해본 것이다.잠들었을때 간혹 무호흡상태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徐9단은 90년무렵『내가슴은 상처투성이』라고 말하곤 했다.曺9단의 송곳에 수없이찔려 아리다고 했다.
추상적인 얘기지만 그의 전적은 현재 9백99승5백28패3무승부.그 5백28패중 무려 2백21번을 曺9단에게 당했다.중요한점은 그가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했다는 점이다.
이창호(李昌鎬).유창혁(劉昌赫)이 등장하자 『한사람도 힘든데세사람이 됐으니 서봉수는 끝났다』는 얘기가 바둑계에 공공연히 나돌았다.그러나 徐9단은 불사신처럼 슬럼프에서 재기하더니 이창호를 꺾고 동양증권배를 움켜쥐었고,잉창치배에서도 우승했다.
-그때 서봉수야말로 생명이 가장 긴 기사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지금의 슬럼프도 말하자면 크게 뛰기 위한 움츠림이아닐까. 『운동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다.조훈현은 나보다체력이 훨씬 좋다.정신력만으론 이미 한계에 온 것같다.』 徐9단은 오직 체력에 골몰하고 있었다.기술이 떨어진다고는 한번도 말하지 않는 것을 보면 힘을 기른뒤 충분히 반격할 수 있다는 그의 자신감을 읽을 수 있다.
지난달 9백97승에서 7연패.11월2일 신예강자 최명훈(崔明勳)3단을 꺾고 9백98승.
그다음 崔3단과 박승문(朴勝文)3단이란 무명에게 연패하더니 12일 윤성현(尹盛鉉)5단에게 이겨 드디어 9백99승.
이때부터 徐9단이 대국할 때면 한국기원엔 기자와 관계자.TV카메라가 운집해 대망의 1천승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16일 김동엽(金東燁)6단에게 패했다.
22일의 국기전 예선에선 노장 고재희(高在熙)7단에게 꺾였다.高7단은 국후 이렇게 말했다.
『신문을 보니 이날은 1천승이 틀림없다는 식이었다(상대가 노장이니까).그렇다면 해보자고 이를 악물었다.또 남의 기록에 제물이 되는 것은 프로의 수치 아닌가.』 高7단은 초읽기에 몰리며 徐9단의 대마를 잡아버렸다.이튿날 徐9단은 조훈현9단과의 TV바둑에서 또 졌다.이제 그의 기록작성은 12월2일로 미뤄졌다. 상대는 서능욱(徐能旭)9단.
바둑계에선 서봉수를 대서(大徐),서능욱을 소서(小徐)라 부르는데 대서는 소서에게 승률이 나쁘다.
-모두들 曺9단과의 대국에서 1천승을 달성하길 바랐다.그날의심정은 어땠는가.
***『조 훈현은 강하다.이창호도 강하다.나는 기록에 연연하지 않는다.
살아남느냐,마느냐 나는 그 기로에 서있다.』 -예전의 야성과생명력.자신감을 기억하는가.徐9단의 무기는 그것이다.그러나 요즘은 약간 꺾인 것같다.무엇보다도 이창호를 너무 높이 쳐주는 것이 승리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내가… 그렇게 보이나.』 徐9단은 다시 실눈을 뜨고 허공을응시하고 있다.승부사들은 여간해서 흉중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는 이창호가 프로가 되기도 전에 끝내기 단 한수를 보고 대성을 예견했다.끝내기가 사소하게 치부되었던 시절인데도『저게 바로 중요한 재능』 이라고 단언했다.실전주의자로서,별명 그대로 야전사령관으로서 그의 안목은 이론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갖고 있었다. 한국바둑이 세계를 제패했을 때 일본과 중국은 한국바둑을이렇게 평했다.『힘과 전투력,정체불명의 생명력.』 -그 생명력이 한국바둑의 몸에 깃들인 것은 徐9단의 공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 생명력은 결코 이창호의 계산에 비해 아래가 아니라고생각하는데….
***『승 부는 하루아침에 나지 않는다.나는 조훈현에게 원리를 배웠고,이젠 이창호에게 마무리를 배우고 있다.나는 흡수력 하나로 살아남았다.그리고 지금은 무엇보다 체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徐9단이 치과엘 간다며 떠난뒤 기자는 무수한 역경을 헤쳐온 서봉수가 이번만은 진짜 위기라고 느끼고 있구나 하는 것을알 수 있었다.
본능과 기질로 신화를 이룬 서봉수.그는「1천승」에 얽힌 대위기속에서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소생할 수 있을까.이건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강력한 10대들이 자욱하게 깔린 바둑계는 이미 예전의 바둑계가 아니다.
그러나 바둑계에 다시 없을 귀재(鬼才)인 서봉수는 꼭 방법을찾을 것이란 예감이 든다.그는 한국적 생명력의 상징이니까 소원대로 체력을 비축하여 다시 비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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