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변신 중…국제미술제 '아르코' 展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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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이 미술 강국으로 거듭나려는 시동을 걸었다. 지난해 현대미술의 거장 피카소(1881~1973)의 30주기를 기려 그의 고향 말라가에 피카소 미술관을 개관하고 '피카소의 해'를 선포했던 스페인은 올해 초현실주의의 대가 살바도르 달리(1904~89)의 탄생 1백주년을 맞아 2004년을 '달리의 해'로 정해 떠들썩하게 보내고 있다. 97년 빌바오에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의 성공에 힘입어 미술상품 관광화에도 앞장섰다.

지난 11일 저녁, 레알 마드리드와 세비야 팀의 국왕컵(코파 델 레이) 축구대회 결승전으로 축제 분위기에 들뜬 마드리드 시내 한 쪽에서는 그에 못지않은 열기에 휩싸인 미술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12일부터 16일까지 '후앙 카를로스 1세 전시센터'에서 열리는 '아르코(ARCO.국제현대미술견본시) 2004'전야제였다. 오후 7시, 소피아 왕비가 모습을 드러내자 전시장을 가득 메운 2천여 관람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르코'의 명예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왕 후앙 카를로스 1세를 대신해 전시장을 찾은 소피아 왕비는 전시장을 돌며 미술 관계자들을 악수와 미소로 격려했다.

82년 시작해 올해로 23회째를 맞은 '아르코 2004'에는 외국 화랑 1백84개, 스페인 화랑 93개 등 모두 32개 나라에서 2백77개 화랑이 부스(판매 전시장)를 차렸다. 한국에서는 지난 92년 예화랑이 참가한 뒤 뜸한 공백을 깨고 박영덕화랑이 심수구.함섭.이상효씨 등 7명의 한국 작가와 스페인 작가 1명이 먼 길을 날아왔다. 최근 해외 유학파가 많아지면서 외국 화랑에 소속된 한국 출신 작가들이 늘어나는 흐름을 반영한 듯 서도호(스페인 솔레다드 로렌조 화랑).유정현(독일 프뤼스 & 옥스 화랑)씨 등 한국인 이름이 전시장 곳곳에 박혀 있었다.

올해 '아르코' 참가 작가들의 특징은 세계 미술 시장의 흐름을 반영한 듯 '회화의 복권'과 '사진의 강세'두가지로 추릴 수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세계 미술계를 주도했던 설치미술과 비디오 작업 등이 서서히 물러나면서 그 반작용으로 평면 회화가 돌아오고 사진미술 시장의 가격대가 높아지는 추세다. 또 각국 화랑들의 아트 페어(미술견본시) 의존도가 커지면서 각 대륙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가 서로 협력하며 이를 미술시장의 돌파구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아르코' 조직위원회가 미국 '아모리 쇼'와 협력관계를 맺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이 그 한 예다. 오는 3월 12일부터 15일까지 뉴욕에서 열리는 국제미술견본시인 '아모리 쇼'는 '아르코'와 '수집의 시작과 오늘날 미술관의 큐레이팅'을 주제로 한 국제포럼을 공동 개최하는 등 긴밀하게 협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세계 미술 시장에 보내는 스페인의 눈길도 뜨겁다. '아르코'는 해마다 뽑는 주빈국에 2004년 그리스를 선정한 데 이어 2007년을 '한국의 해'로 정해 스페인에 한국 현대미술을 본격 소개하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무역 전쟁에 이어 예술을 팔고 사는 문화 전쟁이 21세기 초엽부터 뜨거운 현장, 그곳이 지금 스페인이다.

마드리드=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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