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창,월광의 ‘32 계단’을 오르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9호 09면

피아니스트 백건우(61)씨는 지난여름 ‘베토벤 산책로’라 이름 붙은 오스트리아 빈의 숲을 거닐었다. 무성한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렸고 백건우의 시선은 하늘을 향해 있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하는 백건우씨

그가 베토벤을 이해하는 방법으로 산책을 택한 이유는 이 작곡가의 습관 때문이다. “나의 악상은 예상치 않은 때에 온다. 자연에서, 산책하면서, 이른 새벽에 오는 것을 나는 음표로 바꾼다”는 말을 남겼던 베토벤은 숲 속을 산책하면서 작곡하는 습관이 있었다. 백건우는 베토벤처럼 뒷짐을 지고 나무 사이를 거닐었다.

베토벤은 이렇게 얻은 영감을 몇 번이고 다듬었다. 그는 하이든·모차르트와는 달리 작품의 완성 기한에 쫓기지 않았다.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곡을 다시 쓸 수 있었다. 또 최종 완성본보다 몇 배 더 긴 악상 스케치를 남겼다. 초기 착상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는 증거다.

베토벤의 곡을 모두 연주하기로 결심하면 이러한 에너지를 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자연이 주는 영감이 무엇인지 이해할 능력도 있어야 한다. 지난달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을 하루에 연주한 첼리스트 양성원(40)씨는 “처음 베토벤을 연주했을 때 기둥이 없어진 건물을 양손으로 떠받들고 서 있어야 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건반 위의 구도자’라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연주 모습.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고 난 그는 사진작가 배병우의 꿈틀거리는 소나무를 앨범 맨 앞에 넣었다. “베토벤이 산책했던 숲 같다”면서. 곧게 뻗기보다는 구불구불한 소나무의 선이 연주자에게 이러한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베토벤 이전 작곡가들의 관심은 음악의 아름다움이었다. 완벽하게 조화된 화음과 사랑스러운 멜로디가 주를 이뤘다. 베토벤은 최초로 추함과 고통까지 표현한 인물이다. 기존의 음악에 익숙했던 청중 중 한 명이었던 작곡가 무치오 클레멘티(1752~1832)가 베토벤의 현악 4중주(No.7 Op.59-1)를 듣고 “설마 이 곡이 잘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라고 물었을 때 베토벤은 “내 음악은 당신들을 위한 게 아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한다. 그는 듣기 불편한 화음과 깨질 듯한 음량까지 음악에 담았다.

베토벤의 삶 자체가 곧은 직선보다는 굽이치는 곡선에 가까웠다. 그래서 백건우는 숲에서 한 칸짜리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평 안 되는 베토벤의 방을 둘러본 그는 “이렇게 작은 방에서 그 큰 곡들이 나왔다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빈의 이 방에서 말 그대로 ‘두들기듯’ 쳐내야 하는 피아노 소나타 ‘하머 클라비어’와 웅장한 ‘장엄 미사’가 작곡됐다.

백건우는 이 방에 살던 당시 베토벤의 주치의가 남긴 기록도 찾았다. 작곡가는 몸과 마음 양쪽이 다 아팠다. 건강이나 정신적으로 모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예술은 주위 환경을 초월한다”는 게 이 방에서 백건우가 얻은 결론이다.

백건우는 이어 베토벤의 교향곡 4번이 초연된 공연장의 객석에 앉아 지휘하는 작곡가의 뒷모습을 상상했다. 베토벤이 유서를 쓴 집에서는 그의 마음을 헤아렸다. 그리고 “베토벤의 삶은 괴롭고 비참했지만 사랑 또한 넘쳤다”는 말로 이 여정을 정리했다.
베토벤의 삶을 좇아 한 철을 보낸 백건우는 “그 어떤 음악보다도 삶에 대한 열정이 넘친다”며 소개한 피아노 소나타 서른두 곡을 7일 8회에 걸쳐 단숨에 연주한다.

어제(8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무대를 연 그는 14일까지 전곡 연주회를 이어간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던 20대의 베토벤부터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트릴로 내면의 불안정함을 드러내는 50대의 베토벤까지를 만날 수 있다. 32곡은 베토벤의 삶 전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