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인간의 아이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친구의 집은 단독주택가에 있다.아파트안 좁은 공간에서만 살다가 친구의 마당 있는 집에 가서 오랜만에 흙도 밟아보고 텃밭도일구고 나면 심신이 상쾌해져 친구집을 자주 방문하게 되었다.친구집이 있는 주택가는 호화롭진 않지만 그래도 고 급주택가에 속한다.흔히 고급주택가들은 집안 풍경은 아름답지만 골목은 삭막하기가 쉽다.한여름에 친구집을 방문할 때면 친구집 대문안으로 들어서기까지가 이루 말할수 없는 고역이었다.그러다가 대문을 들어서면 골목밖 풍경같은 것은 까맣게 잊 어버리고 만다.언젠가 한번은 포장이 잘된 널찍한 골목안을 걸어 오다가 앞쪽에서 달려오는 자동차에 치일 뻔한 일이 있었다.
친구집의 마당은 그리운데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그 동네의 골목을 지나가기가 겁이 나서 지난 여름을 아파트 안에서만 보내다가 가을이 와서 오랜만에 그 동네를 가게 되었다.내 딴에는 큰맘 먹고 가는 길이었다.되도록이면 담벼락 쪽으로 길을 걷고 있는데 한무리의 아이들이 무엇인가 일을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는모습이 보였다.겨우 유치원에 다닐까 말까한 조그만 아이들이 하도 열심히 일을 하길래 호기심이 생겨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은 꽃 한포기를 살리기 위해 대공사(大工事)를 벌이고 있었다.지난 여름에 이 골목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한쪽 구석에채송화꽃 한송이가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꽃을 피웠던 모양이다.아이들은 너무나 신기했을 것이다.그리고 견고한 콘크리트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그 생명력에 아직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줄 모르는 그 작은 아이들도 뭔가의 감동이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채송화꽃 한송이를 위해 어른들이 발라놓은 콘크리트를뜯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콘크리트가 너무나 견고해 작업의 진전은 없었지만 나는 한송이의 꽃을 살리기 위한「인간의 아이들」앞에서 감동해 할말을 잊어버렸다.
〈소설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