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염치도 없이 국민세금 넘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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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7일 총무처가 확정발표한 공무원연금제도 개선안은 한마디로 국민들의 세금으로 재원부족사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재직중의 급여제공등 생활보장은 물론 퇴직후의 노후생활까지 보장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수익자부담 원칙」이 근간이어야 할 일종의 공제조합 성격을 띤 제도임에도 당사자인 공무원들의 혜택은 전혀 축소되지 않으며매달 월급에서 떼는 기여금부담만 조금 오를 뿐이다.
그래서인지 공무원들은 개선안의 내용에 대해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기여금부담의 상향조정조차 껄끄러워 하는 공무원도 한두 명 눈에 띄지만 그동안 연금제도 개선을 둘러싸고 공직사회가 보여 온험악한 분위기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그러나 공직자의 퇴직후 생활까지 떠맡게 된 일반국민들의 마음은 우울한 정도를 넘어 야속하기까지 하다.
그동안 정부보조(이것도 국민의 세금)를 받아 가며 어떻게 연금제도를 운영했길래 재정부실을 초래했으며 운영부실의 책임을 왜국민들이 또 져야 하는지 어리둥절하다.
연금을 운영해 온 총무처는 공무원연금이 민간연금처럼 이익이 높은 수익사업만을 하지 못하고 박봉(薄俸)의 공무원들에게 주택자금대출 등 후생복지사업을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높은 이자의 주택자금마저 대출받을 길이 적은 일반국민들이 싼 이자의 후생복지사업 결과 재원이 부족하게 됐고 따라서 부족분을 세금으로 충당한다는 발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낮은 수익률을 감수하면서 연금기금중 막대한 자금을 사회간접자본투자 등 재정자금으로 정부에 융자해 주었으므로 정부가 재원부족을 메워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올초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용역을 의뢰,개편내용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공직사회가 보인 반응을 생각하면 과연 이번 개선안이 적정한 절차를 거쳐 마련된 것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이번 개선안이 공무원들의 철저한「집단이기주의」에 가로막혀국민전체보다는 공무원 특정집단의 편파적 시각에서 마련됐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최근 잇따른 세무비리로 자신들이 낸 세금이 제대로 국고에 들어가고 있는지에도 의문을 갖고 있는 판에 운영잘못에서 발생한 문제의 해결방안을 국민세금인 국고에서 찾는 발상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차제에 이 연금이 부실화된 과정과 요인,그리고 책임소재를 가린 후에 수익자부담 원칙에 따라 다른 해결책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국민의 세금은 공무원들이 아무데나 쓰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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