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종교재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서양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바로 세계였다.로마 교황청은 세계정부였으며,교황은 서유럽 전체 국가들의 원수(元首)였다.
기독교 성립 초기 수세기동안 교회는 로마제국,그리고 이단(異端)과 싸우면서 힘겹게 교회를 지켜나갔다.그러나 중세에 들어오면서 교회는 절대적 위치에 자리잡는다.특히 13세기 들어 교회의 권한은 그 절정에 달했다.교회의 권한은 세속에 까지 확대,교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교회가 벌인 가장 중요한 사업중 하나는 교회로부터이단을 추방하는 일이었다.이단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종교재판(宗敎裁判)이라는 무시무시한 제도가 만들어졌다.
종교재판은 이단자의 탐색.적발.체포.재판.판결.처벌 등 이단박멸 을 위한 모든 활동을 임무로 했다.
이단과의 싸움은 교회성립때부터 있었지만 초기에는 관용적(寬容的)이었다.『교회는 피를 싫어한다』는 원칙에 따라 이단자에 대한 사형집행에 반대했다.그러나 12세기이후 대규모 이단집단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13세기초 南프랑 스에서 일어난 알비주아派는 교회의 고루한 교의(敎義)에 반기(反旗)를 들었다.교회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고 잘못된 신앙의 포기를 거부한 알비주아파 신도 2백명을 한꺼번에 불태워죽였다.20년동안의 알비주아파 박멸운동이 끝난 후 교 황청은 이단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제도적 장치를 만들었다.바로 종교재판이다.
123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는 종교재판소를 만들고 그 운영을 도미니쿠스수도회에 맡겼다.
그후 유럽전역에서 숱한 종교재판이 행해졌다.특히 스페인의 경우는 가혹함의 극치였다.이베리아반도에서 이슬람세력이 물러간후 교회는 기독교 이 단뿐 아니라 유대교와 이슬람교도등 이교도들에게도 잔인한 보복을 가했다.스페인 초대 종교재판소장이었던 토마스 데 토르케마다는 재임중 이단자 약 2천명을 화형에 처했다.
종교재판소는 그후로도 약6백년간이나 유지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4일 발표한「3천년을 맞는 칙서(勅書)」에서 과거 2천년동안 교회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한 불관용(不寬容)과 나치.공산주의 등 전체주의의 인권유린에 침묵했던잘못을 인정했다.이제 새로운 천년을 맞는 가톨릭 교회가 새롭게태어나는 모습을 본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