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多文化主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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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PC하면 퍼스널 컴퓨터를 연상한다.그 퍼스컴 못지않게 또 다른 PC(정치적 교정:Political Correctness)가 유행하고 있다.사전의 철자법에 따른 교정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그 표현을 바로 잡아준다.
흑인을「아프리칸 아메리칸」으로 고쳐 부르고 인디언을「토착 아메리칸」으로「대접」한다.「반란」이나「민중봉기」가 후일「의거」와「민주항쟁」으로 고쳐 불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美國)에서 유행중인 PC는 다문화(多文化)주의와 연관이있다.미국이 남의 나라 인권문제에 왈가왈부할 때마다 듣는 말이있다.『흑인과 인디언들에게 당신네들은 어떻게 했느냐』는 핀잔이다. 미국사회는 잡다(雜多)한 인종과 문화가 뒤섞여 용해되는「용광로」에 비유된다.그러나 소수 인종과 그 문화가 섞여 용해되지 않고「접시위의 샐러드」처럼 갈수록 겉돌고 있다.「다문화주의」는 이에 대한 일종의 자기반성이다.
그 구체적 노력이 세계사 교과서의 개편이다.국민학교 5학년부터 12학년(고3)까지 미국의 세계사 교육은 유럽역사와 서양문명사 일색이다.
이집트-고대 그리스및 로마-르네상스-계몽주의-유럽 제국주의-두차례 세계대전-냉전이 도식이다.이슬람과 중국(中國)등 여타 문명이 끼어들 소지가 없고 기독교문명이 엎드려 있던 시기는 역사의「암흑기」로까지 치부되고 있다.
『다문화적 뿌리에 대한 이해없이는 글로벌시대의 세계는 올바른이해가 불가능하다』는 인식아래 미국의 사학협회와 역사교육전국협의회 패널이 대담한「교정」을 시도했다.
최근 선보인 새 교육지침에서 인류의 발상지로 아프리카가 부각되고 지폐와 화약.목판인쇄를 발명한 중국 송(宋)나라 문화가 큰 대접을 받았다.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마야와 잉카문명이 자리를 되찾고「대서양 노예무역의 발상과 그 파장」이 5학년 교과과정에 올랐다.
새 지침은 구속력은 없으나 교육부가 위촉하는 초당적(超黨的)교과편찬위원회의 승인을 얻으면 전국적 표준으로 효력 을 갖는다.
한 예로 국민학교 세계사 교과과정은 4부로 구성돼 있다.「가족및 공동체속의 삶과 협력」이 제1부다.제2부는「우리 고장의 역사」다.제3부는「민주적 원칙과 가치,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유산으로 이에 기여한 사람들에 의한 미국의 역사」다 .그리고 여러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가 제4부다.컴퓨터 산업에서PC에 버금가는 문화적 인식의 PC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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