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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233 - '구비구비', '메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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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나는 지리산의 아늑한 계곡에 묻히고 싶다. 실상사.천은사.화엄사, 그 곁을 스치는 섬진강 구비구비. 어느 바위엔가 털썩 주저앉아 흐르는 강물, 그 위를 떠도는 낙엽만이 내 친구다."

"역사의 구비마다 권력에 의해 거짓이 진실로, 진실이 거짓으로 뒤바뀌는 구석이 얼마나 많았느냐."

'굽이'는 '휘어서 구부러진 곳'이나 '휘어서 구부러진 곳을 세는 단위'를 이를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이 '굽이'를 발음에 이끌려 자꾸 '구비'로 쓴다. '굽이굽이' '굽이치다''굽이돌다'를 '구비구비''구비치다''구비돌다'로 적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글 맞춤법 제19항은 "어간에 '이'나 '음/-ㅁ'이 붙어 명사로 된 것과 '이'나 '히'가 붙어 부사로 된 것은 그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굽이'는 '굽다'에서 왔으므로 '굽이(굽+이)'로 적는 것이 옳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잠든 딸의 얼굴을 어루만져 준 뒤 부엌으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은 채 찬밥으로 시장기를 메꾸다 보면 내가 정말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곤 했다."

이 문장은 '메우다'를 '메꾸다'로 잘못 쓴 경우다. 구멍이나 빈 곳을 채운다는 뜻의 '메우다'는 '메다'에 사동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우'가 붙은 형태인데, '입맛을 돋우다'를 '입맛을 돋구다'로 잘못 쓰는 것처럼 '메우다'를 '메꾸다'로 거세게 발음하는 경향이 원인인 것 같다.

최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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