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故人의 장서를 어찌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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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평생 고서(古書)와 함께 살아온 서울 인사동(仁寺洞)통문관(通文館)이겸로(李謙魯)옹의 책수집에 얽힌 일화는 무궁무진하다.국보급 고서들이 휴지값으로 매매된 이야기,낡디낡은 고서 한권이 집 한채값에 거래된 이야기등 한권한권에 얽힌 일화들이 모두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특히 6.25중 많은 고서들이 먹고사는 중요한 방법으로 등장했음은 고서들의 문화재적 가치와 함께 현금적 가치를 새삼 실감케 한다.
지금도 필요한 책들을 구하기 위해 고서점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가보(家寶)처럼 소중히 보관해온 책들을 팔기 위해 내놓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책을 팔아먹고 살아야 할만큼의 궁핍을 벗어난 탓도 있겠지만 책을 많이,그 리고 오래 보관해온 사람들일수록 자신의 장서(藏書)에 대한 애착이 더욱 강하기 때문이다.
일평생 특정한 분야에 헌신해온 인사들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고인의 일생을 떠받쳐온 장서들은 당연히 후손들의 차지가 된다.
그러나 후손들이 고인의 업(業)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 종사하는경우 그 장서는 단순한 유품(遺品)의 의미를 크 게 벗어나지 못한다.그 귀중한 책들이 전혀 이용되지 못하고 서가에 꽂힌채 방치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일임은 두말할 나위없다.유족들은장서의 처리문제로 고심하지만 그럴듯한 방안을 찾아내지 못하는게우리네 현실이다.공공도서관이나 학 교도서관에 일괄 기증하는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봤자 뿔뿔이 흩어져 얼마간의 세월이 흐르면 소장자의 이름조차 기억속에서 사라질 것이 뻔한 바에야 차라리 집안에 간직하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다.
장서처리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가 지난해 이맘때 별세한 고고학계의 태두(泰斗)김원룡(金元龍)박사의 경우다.자제들이 모두 부친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미망인 유성숙(劉聖淑)여사는 지난해말 고인이 목숨처럼 아끼던 장서 8 천여권을 서울대 박물관에 기증했다.그 장서 가운데는 자신의 결혼반지를 팔아 산 책도 있다니 그 감회가 어떨는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러나 후학들에게 유용하게 쓰이는 것만이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 것이다.그 장서가 고인의 아호를 딴「삼불문고(三佛文庫)」로 정리돼 최근 개고(開庫)하자 고고학 전공 후학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다.집안에 유품으로 보관하는 것보다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이 방법이 고인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유족들의 한결같은 바람이지만 김원룡박사의 경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는지도 모른다.국내의 어떤 도서관.박물관도 그런 방식으로 장서를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삼불문고」를 만드 는데 앞장섰던 서울대 박물관 안휘준(安輝濬)관장은『고인의 유족들뿐만 아니라 생존해있는 많은 대가(大家)학자들이 작고후의 장서처리문제로고심하고 있다』면서『몇몇 유족들이 독립된 문고설치를 조건으로 도서관에 장서를 기증하려 했으나 한결 같이 거절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털어놓았다.우선 어떤 도서관이고 그같은 특별공간을마련해줄 여건이 되어있지 않으며,공간이 확보돼 있다 하더라도 별도 관리해야 하는 능력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것이다.설혹 무리해서 독립문고를 만든다 해도 관리자가 바뀌게 되면 그 문고의 존폐에 대해 아무도 책임질 수 없다는 점 또한섣불리 문고를 설치하는 것을 주저케 한다는 설명이다.
***學問발전에 큰손실 목칠(木漆)등 전통.전승공예연구에 독보적이었으며 최근 유저(遺著)『한국의 전통공예』가 출간된 故 이종석(李宗碩)前 호암(湖巖)갤러리관장의 유족들도 그 방면의 귀중한 전문서들이 대책없이 먼지속에 파묻혀 있음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이 렇듯 각 분야의 귀중한 전문서적들이 거의 사장(死藏)되고 있음은 학문의 발전이란 측면에서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귀하고 값진 책을 기증하려 해도 받아줄 곳이 없는 오늘의세태는「책의 문화」와 관련해 생각할때 예삿일이 아니다.그 하 나하나의 책들이 얼마간의 세월이 흐른뒤에 하나같이 귀중한 문화유산이 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하기 짝이없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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