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제6기 동양증권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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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난 10월15일 서울 소공동의 롯데호텔에서 베풀어진「제6기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전」의 전야제때 와타나베 후미오(渡邊文夫)일본기원 이사장,천쭈더(陳祖德)중국바둑협회 주석 겸 중국기원 원장,잉밍하오(應明皓)잉창치(應昌期)바둑교육 기금회 이사장이 귀빈으로 참석해 차례로 축사를 했는데 이중 잉창치의 장남이기도 한 잉밍하오의 축사가 자못 이색적이어서 두고두고 화제다.
『저의 부친께서 이 성대한 잔치에 초청을 받아 대단히 기뻐하셨지만 지난6월 장(腸)수술을 받은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탓으로 참석지 못하고 제가 대신 축사에 임하게 된 점을 대단히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부친은 못오시는 것을 안타 까워하시며 한국의 1천만 바둑애호가 여러분께 선물 한점을 전해달라고 저에게맡기셨습니다.』 『그 선물은 바로 이것입니다.부친이 직접 먹을갈아 쓰신 축하 메시지입니다』라며 펼쳐보인 족자에는『최근 6년간 14차례의 세계바둑대회 중 대한민국이 아홉번의 우승을 차지했습니다.귀국이야말로 세계 제일입니다.그 휘황찬란한 전적이 입증합니다.제6기 동양증권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에 즈음해 잉창치바둑교육기금회 창설자 잉창치 삼가 축하드립니다』라는 뜻의 글귀가씌어 있었다.
「近六年來 世界圍棋十四次大賽中 흘今爲止 大韓民國 獲得九次冠軍.世界圍棋貴國第一.戰績輝惶 寔至名歸.第六屆東洋證券杯世界圍棋選手權大會 開幕式.應昌期圍棋敎育基金會創辦人 謹賀.一九九四年十月十四日」. 주최측(한국)으로서는 듣기 좋은 얘기였지만 중국과 일본측의 입장에서는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내용이었던 것.그렇게 자존심을 흔들어 놓은 탓일까.중국과 일본기사들이 결사적으로 나오는 바람에 자만심에 빠진 한국기사들은 추풍낙엽.조훈현( 曺薰鉉)유창혁(劉昌赫)2명만이 8강에 올랐을 뿐이다.
조훈현9단도 패색이 짙던 상황에서 상대인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9단의 어이없는 실수에 힘입어 가까스로 역전승을 거두었다.혼비백산했던 한국기원 관계자들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모습이었다. 8강에 오른 면면을 살펴보면 조훈현.유창혁 이상 한국,녜워이핑(섭衛平).마샤오춘(馬曉春).첸위핑(錢宇平)이상 중국,야마시로 히로시(山城宏).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이상 일본,왕리청(王立誠)중화대북이다.
민족별로는 한국인 2명,중국인 4명,일본인 2명이요 기원별로는 한국기원 2명,중국기원 3명,일본기원 3명(왕리청은 일본기원 소속)이어서 이모저모로 한국이 열세인 셈이다.
이번 대회의 특기사항은 명인전 도전자로 바쁜 린하이펑(林海峯)9단을 대신해 왕리청9단이 참가했으며 요다 노리모토 9단의 8강진출과 첸위핑9단의 재등장이다.
지난번 진로배와 동양증권배에서 돌풍을 일으켜 우리의 간담을 서늘케 했고,아무도 꺾을 수 없을것만 같던 그 기세를 조훈현이라는 주인공이 나타나 간단히 잠재웠던 그 극적인 명승부를 어찌잊으랴. 한편 91년 봄 후지쓰배 결승에 올랐다가 발병(정신분열증),조치훈(趙治勳)9단에게 기권패를 당했던 비운(悲運)의 천재기사 첸위핑의 재기는 정말 반갑다.『아직 완전치는 않으나 바둑만 두면 맑은 정신이 돌아온다』는 마샤오춘9단의 분석 이다.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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