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골프>골퍼.弓士 대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골프의 승부가 「타(打)」로 결정된다면 양궁의 승패는 「사(射)」로 판가름난다.
「타」와 「사」가 대결한다면 과연 어느 쪽이 이길까.얼핏 생각하기에 골프는 클럽과 볼을,양궁은 활과 화살을 각각 사용하므로 골퍼와 궁사간에는 대결이라는 게 성립될 수조차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골퍼와 궁사들간에 많은 겨룸이 이뤄 졌었다.물론요즘은 아니고 20세기 전반기의 얘기다.
골퍼와 궁사가 언제 첫 대결을 벌였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기록된 첫 사례는 1906년으로 골프광이자 유명한 궁사인 영국의 랠프 페인 골웨이경(卿)이 리치먼드의 프로 골퍼인 W 헌터와 벌인 1대 1홀매치다.
터키제 활과 화살을 사용한 골웨이는 티샷에서 드라이버 대신 활을 사용해 그린에 도달한 뒤 화살이 떨어진 곳에 볼을 놓고 이번엔 클럽(퍼터)으로 홀아웃 했으며,헌터는 골프 클럽으로 정상적인 라운딩을 했다.
단,골웨이가 활을 한번 쏘면 4백야드(3백66m)정도나 날아가기 때문에 공정한 경기를 위해 헌터는 전체 거리의 3분의1 앞으로 나가 티샷을 했다.
두 선수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5대4로 골퍼인 헌터가 신승했다.아홉 홀은 무승부였다.
그런가 하면 1920~30년대에 열린 수많은 「打-射」대결에서는 오히려 「사」가 이긴 적이 많았다.1926년 3월 영국 로이스톤GC에서 열린 골퍼와 궁사들의 단체전에서는 케임브리지 궁사팀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7명의 선수로 구성된 두팀의 대결에서 궁사들은 활과 화살만을사용하고 그린위에 홀컵 크기(4.25인치)의 「밀짚 볼」을 화살로 관통해야 했으며,벙커에 화살이 떨어지면 1타를 더하도록 규칙을 정했다.물론 골퍼들은 정상적으로 클럽을 사용,홀아웃했다. 그 결과 7전4승1무2패로 케임브리지 궁사팀이 이겼으며,특히 주장은 2언더파 70「射」로 라운딩을 마쳐 갈채를 받기도 했다. 그린에서 두쪽 다 퍼터를 쓰던 초창기 대결에서 궁사들은퍼팅 감각을 익히지 못해 지기도 했으나 밀짚 볼을 꿰뚫는 경기로 바뀐 1920년대 이후에는 오히려 궁사들이 많은 승리를 거두었다. 만일 국내에서 프로골퍼와 양궁선수들이 대결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양궁은 남녀를 불문하고 세계 정상으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양궁선수들이 일방적으로 승리할 것이라 추측할수 있겠지만 프로들에게는 「승부근성」이라는 「돌출 요인」이 있는 만큼 속단은 금물이다.
〈林秉太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