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어린이책] 똥이 더럽다고? 옛날 사람 생활이 보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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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과학이 된 흔적, 똥 화석
제이콥 버코위츠 글, 스티브 맥 그림, 이충호 옮김
주니어김영사, 104쪽, 8500원, 초등생

어린이용 교양서가 참 다양해졌다. ‘인체’나 ‘공룡’등 흔한 주제를 색다른 형식·각도로 포장하는가 하면, ‘잠’(『잠의 비밀을 풀다』, 웅진주니어)이나 ‘쌀’(『어린이가 꼭 알아야 할 쌀 이야기』, 영교출판) 같이 미시적인 주제를 잡아 관련 과학·문화·역사를 종합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흔치 않은 소재 ‘똥 화석’을 소개하는 이 책은 후자 쪽이다. 다양한 똥 화석 사진을 통해 진짜 똥 화석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 똥 화석이 갖고 있는 역사적 가치와 생물학적 중요성 등을 총망라했다.

물렁물렁한 똥이 오랜 시간 버텨 단단한 돌이 되는 과정부터 재미있다. 이른바 ‘똥이 살아남는 법’이다. 일단 출발부터 딱딱해야 한다. 그래서 소화가 덜 된 뼈나 껍데기, 털가죽 같은 딱딱한 물질이 섞인 육식동물의 똥이 유리하다. 게다가 육식동물의 똥은 쇠똥구리나 파리처럼 똥을 먹는 곤충들에게 별 인기가 없다. 음식물 대부분을 소화시킨 상태로 똥을 눠 똥에 영양분이 얼마 없기 때문이란다. 똥이 떨어진 장소가 부드러운 모래나 진흙 위라면, 일단 긍정적이다. 똥 위에 모래와 진흙이 쌓이고 또 쌓여, 퇴적층을 이루면 돌이 될 확률이 커진다. 퇴적층이 내리누르는 무게 때문에 똥 주위의 층들이 석회암·이암·사암 등의 암석으로 변하고, 똥 역시 암석으로 변하는 것이다.

똥 얘기는 점점 심오하게 흘러간다. 똥의 주인공을 찾는 방법, 주인공이 살았던 연대를 추정하는 방법, 똥을 통해 당시 생활·문화상을 알아내는 방법 등을 알려준다.

사실 똥만큼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주제도 없다. 동화나 동시 속에서 똥이 등장하면 ‘꺄르르’ 웃음보가 터지는 게 아이들의 일반적인 반응이다. (그 이유에 대한 다양한 추론이 가능하다. 똥이 아이들 스스로 힘을 들여 만들어낸 최초의 결과물이어서라는 가설도 그럴듯하다.)

이 책은 그 똥에 일평생 몸 바쳐 산 과학자들도 소개한다. ‘똥 화석’ 전문가들이다. 캐나다 맥길대학 교수였던 에릭 캘런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돌처럼 단단한 똥 화석을 원래의 흐물흐물한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 내용물을 분석하기 위해서였다. 똥 화석을 제삼인산나트륨이 담긴 비커 속에 집어넣고 48시간만 기다리면 냄새까지 풍기는 원래 똥 모습으로 돌아간단다. 연구 결과 캘런은 옛날 사람들이 옥수수 같은 곡물을 재배해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캘런의 죽음도 영웅적이다. 고대 잉카인의 똥 화석을 연구하다 1970년 페루의 높은 산에서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어른이 읽기에도 흥미진진한 내용이 많다. 똥 화석이 과거에서 현재로 보내는 메시지를 하나하나 쫓다 보면, 더 이상 똥을 하찮게 보기 힘들 듯싶다. 그렇다면. ‘더럽다’ ‘쓸모없다’ 무시당하면서도 제 가치를 꼿꼿이 지키는 게 어디 똥뿐이랴. 주변의 잡동사니도 새삼 소중하게 보게 하는, 의외의 덤까지 전하는 책이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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