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에서>長竹의 권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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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우리는 지난 30년동안 정권의 정통성 부재(不在)를 냉소해오다가 참으로 받들어 간직해야 할 소중한 「권위」까지 상실해버렸다. 때문에 그 대가로 자식이 아버지를 살해하고,만취학생이 교수를 폭행하고,사병이 장교를 사살하는 윤리가 뒤집힌 세태를 살아야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물론 오늘의 윤리 도착(倒錯)현상이꼭 권위의 상실때문만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의 경우 그 주요 원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군사권위주의 독재는 마땅히 거부해야 했다.그러나 「권위주의」를 거부하는 나머지 시민사회의 정신적.지적(知的) 지침의 원천이 되는 값진 권위조차 배격해서는 안된다.
진정한 도덕적.양심적 권위는 마땅히 실현돼야할 사회정의의 모양을 결정한다.이같은 사회정의를 모태(母胎)로 한 사회.경제질서는 법제화.제도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권위란 쉽게 말해 어른을 믿고 따르는데서부터 생겨난다.
자식과 학생이 아버지와 스승을 폭행하는 패륜은 마땅히 인정해야할 권위를 거부한것이라고 볼수있다.
사회도 마찬가지다.어떤 중대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실정법 이전에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려줘야할 도덕적 권위가 절대 필요한것이다.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역할을 해야 할 어떠한 종교인도,대학총장도,사회원로도 선뜻 인정하려 하지않는다.
독재를 거부한 민주화가 일체의 차별과 도덕적 수직관계를 무시한 채 한일자(一)로 맞먹는 결과론적 평등을 요구해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는 지금 항해용 나침반을 잃어버린 망망대해위의 돛단배처럼 절망적인 「권위상실」의 시대를 살고있는게 아닌지 깊이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50대가 넘은 사람들이면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 꿇려 앉히고훈계할 때 머리를 때리던 장죽(長竹)의 「권위」를 기억할 것이다. 이제 현대판 장죽의 권위가 국가 기능과 역할이 점점 줄어드는 공간을 메워줘야 건전한 시민사회가 형성될수 있다.
〈편집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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