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쓰는가정이야기>아내에 귀가시간 알려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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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집에서 걱정하는 사람 생각해서 전화 좀 해요.』 우리 부부사이에 작지만 커다란 문제가 하나 있다.바로 전화문제다.부부가뭐길래 그깟 전화 한통때문에 티격태격 하는 걸까.
부부야말로 살아가는 동안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이같지만 일상생활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 만도 않다.
「따귀빼고 살빼고」 하는 식으로 잠자는 시간빼고 밖에서 보내는 시간을 빼면 말이 함께 사는 것이지 따로인 경우가 많다.
우스개로 『아이가 많이 컸어요?』하고 물으면 양손을 좌우로 벌려 『이만큼』하는 아버지들이 있다고 한다.허구한날 밤늦게 들어가 잠자는 아이 모습만 보게되니 키가 아니라 너비로 아이의 키를 가늠하는 것이다.
아이가 어떻게 크는지,집안일은 어찌 돌아가는지 무관심한채 날마다 일이다,술이다 해서 전화 한통없이 늦게 돌아오는 건 분명남편들 잘못이다.하지만 이것을 남편 개인만의 잘못과 책임으로 물어 따질 일은 아니다.
술마시는 것도 다 비즈니스인데,마셨다하면 뿌리를 뽑아야지 좀스럽게 마누라걱정이나 하면서 언제 사회생활하고 언제 능력을 인정받겠느냐는 식의 우리 사회 술문화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분위기도 많이 달라진 것같다.술자리에서도남의 눈치 보지 않고 중간중간 집으로 전화 걸어 언제쯤 들어가겠노라고,오늘은 자리가 좀 길어져서 미안하다고 하는 남편도 꽤많이 눈에 띈다.또 TV를 보면 술잔에 아내와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리면서 『아내에게 귀가 시간을 알려주세요』하는 광고가 나온다.잔잔하면서도 설득력있는 광고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남편들의 의식도 많이 바뀐 것같다.조금만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얼마나 많은 남편들이 집으로 전 화를 안하면 이런 광고까지 나오겠는가.만약 남편들이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내가 밖에서 사회생활을 한다면,그래서 아내가 전화 한통없이 친구들과 술자리에 어울려 12시 땡치고도 한참만에 귀가한다면 『오늘 모처럼 친구만나서 즐거웠냐고』 고 반갑게 맞아줄 남편은 몇이나 될까? 〈도서출판 그린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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