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부른 '뉴 키즈 온더 블록' 오빠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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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세계적인 팝 싱어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공연 현장. 공연장은 괴성과 기성으로 가득찼고, 일부 소녀팬들은 자신의 속옷을 무대위로 내던지기도 했다. 지금의 부모님 세대가 청춘을 즐기던 1969년 10월의 일이다.

그로부터 22년. 1992년 오늘(2월17일) 미국의 5인조 팝그룹 '뉴 키즈 온더 블록'의 내한공연에는 그들의 아들·딸들이 폭발직전의 광적인 열기를 뿜어댔다. 공연표 예매와 멤버들의 입국 현장에서 이미 한바탕 소동을 일으켰던 오빠부대의 어린 열정은 공연당일 끝내 한 10대소녀의 사망사고로 이어져 우리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주었다.

'뉴키즈 온더 블록'은 84년 결성된 보이밴드로 94년 해체되기까지 모두 5천만장의 앨범 판매고를 올리며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으로 추앙받았던 그룹이다.

그날 오후 7시30분. 공연이 있던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는 1만5천여명의 팬들로 관중석이 꽉찼다. 당시로는 꽤나 비쌌던 4~5만원하던 표는 예매 전날부터 밤을 지새던 극성팬들에 의해 시작 20여분에 동이 났고, 암표가 10만원이상에 거래되기도 했다.

드디어 '뉴 키즈 온더 블록'이 자신들의 히트곡 '스텝 바이 스텝'을 부르며 무대위로 나타났다. 그동안 방송과 음반을 통해서만 접해오던 그들의 우상이 실물과 육성으로 등장한 것이다. 환호하던 관중 가운데 1천여명이 준비해간 꽃·선물 등을 던지기 위해 갑자기 앞으로 몰렸다.

이로인해 무대 앞쪽 땅바닥에 앉아있던 1백여명의 관객들이 밑에 깔리면서 비명과 함께 공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밑에 깔린 10대소녀들은 피를 흘리며 신음했고 70여명이 졸도, 인근병원으로 긴급 호송됐다. 이 과정에서 폐를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던 朴모양은 32시간만인 19일 오전 결국 숨을 거뒀다.

중단됐던 공연은 그러나 관객들의 계속된 요구로 11시30분께 재개됐고, '뉴 키즈'가 10여곡을 부르는 사이 또다시 흥분한 관객들이 잇따라 졸도, 밖으로 실려나가기도 했다.

이날의 소동으로 공연주최사 사장이 구속되었고,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상술에 이용하면서 안전문제를 소홀히 한 기성세대에 대한 질타와 10대에 대한 몰이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사회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등 '뉴키즈 파동' 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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