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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집게'수색 … 다른 제보자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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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나흘째 삼성증권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여 온 검찰 수사관들이 3일 압수 물품을 담은 상자를 들고 서울 수서동 삼성증권 전산센터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삼성그룹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 특별수사.감찰본부(검찰 특본) 김수남 차장검사는 3일 "삼성증권과 전산센터, 삼성SDS e데이터센터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삼성 계열사 임직원 10여 명을 추가로 출국 금지했다"고 말했다.

출국 금지자에는 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 전 사장은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한 임원 중 한 명"이라고 지목한 바 있다.

검찰 특본은 차명계좌를 이용해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부서 임직원들의 컴퓨터 접속기록을 분석 중이다.

김 차장검사는 "당초 목표했던 압수 대상물을 상당 부분 확보했다"며 압수수색에서 성과가 있었음을 내비쳤다. 그는 "전산센터 압수물은 증권 거래 내역보다 2000년 이후 재직한 임직원들의 컴퓨터 접속 기록을 살펴보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비자금 의혹에 한발 접근=검찰 특본은 삼성증권 압수수색에 들어가기 전 김용철 변호사와 다른 내부 고발자를 통한 첩보를 통해 압수수색 대상과 관련자를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특본은 특정 임직원들이 컴퓨터에 접속해 어떤 작업을 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뒤졌다. 압수수색한 데이터 양도 당초 알려진 것보다 적은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증권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압수된 정보량은 30메가(바이트) 정도"라고 말했다. 이는 검찰 특본이 압수수색 대상이라고 했던 4.8테라바이트의 10만분의 1도 안 되는 분량이다.

검찰 특본은 컴퓨터 로그 기록을 통해 삼성증권 임직원들이 특정 시점에 주고받은 문서나 e-메일을 확인 중이다. 검찰 관계자는 "비자금 조성 작업이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에 주요 임직원들 간의 각종 지시 사항과 내부 통신 자료는 수사의 가장 중요한 단서"라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는 이날 검찰에 출두하면서 "임원 명의 차명계좌가 1000개 이상 있다. 나처럼 삼성과 관계가 안 좋은 사람한테도 50억원을 넣어 뒀는데 다 합치면 수조원이 되지 않겠나"라고 주장했다.

◆삼성, 내부 고발자 또 있나=김용철 변호사 이외에 삼성그룹 출신의 다른 내부 고발자들이 있다는 추측이 검찰과 삼성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김수남 차장검사는 또 다른 내부 제보자에 대해 "코멘트하기 곤란하다"며 부인하지 않았다.

삼성증권 측은 2004년 퇴사한 박모씨를 지목하고 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박씨는 김 변호사의 의혹 제기 이후 "비자금 관리 임원 명단과 계좌를 알고 있으니 돈을 달라"며 30차례 가까이 협박 메일을 삼성증권 고위 인사들에게 보냈다는 것이다. 검찰 특본은 삼성증권 감사팀에서 모아둔 박씨의 협박 메일을 압수해 내용을 분석 중이다.

삼성증권은 해명자료를 통해 "일부 언론에 보도된 차명계좌 리스트는 현재 사기죄로 수배 중인 전 삼성증권 직원 박모씨가 전.현직 삼성 임원들을 임의로 검색해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 측은 삼성증권을 콕 찍어 강도 높은 압수수색이 벌어진 것이 또 다른 제보자 때문은 아닌지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김용철 변호사는 비자금 조성 의혹을 폭로하면서 삼성증권은 거론하지 않았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1992년 회사가 출범한 이래 수많은 임원이 퇴직했기 때문에 다른 제보자가 있다 해도 신원을 파악하기는 불가능한 상황" 이라고 말했다.

◆황영기 전 사장 "비자금과 무관"=황영기 전 삼성증권 사장은 "삼성 비자금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선거대책위 경제살리기특위 부위원장인 그는 지난달 30일 국제 금융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다가 이날 오전 귀국했다.

황 전 사장은 "삼성증권 사장으로 재직했지만 비자금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 없다. 혹시 내 명의의 비자금이 나왔다면 도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외환위기 이전에는 비자금 조성 관행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후에는 삼성그룹이 철저하게 관리한 것으로 안다"며 "최근의 비자금 사태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황 전 사장은 대통합민주신당 김현미 의원이 자신의 출국을 두고 "미국으로 도망갔다"고 말한 것에 대해 "명예훼손으로 법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표재용.김승현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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