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코너>전성우 한양대교수 통일의길 논문서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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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제네바 북-미 핵협상 타결 이후 한반도 정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논의되고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남북경제협력을 위한 새 원칙을 표명하는 등 남북관계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그런 가운데 남북한의 통일은 서로 다른 사회체제의 「사회적 통합」이라는 관점에서 파악돼야하며 사회통합을 고려하지 않은 체제통합은 독일과 같은 심각한 「휴유증」을 낳을 수있다는 논문이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흡수통합론이든 점진적 통일론이든 지금까지 대부분의 통일논 의는 체제통합에 초점을 맞추어왔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독일과 예멘의 경우가 보여주듯 통일이 체제의 통합을 넘어 사회통합으로 이어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이 분명해졌다.예멘은 통합 이후 남북 사이에 내전을 겪었으며 독일은 4년 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당시의 낙관적 전망과는 달리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와 방향감각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소에서 개최한 『통일의 길:두 가지 전망』학술회의에서 전성우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는 발제논문을 통해 지난 40년간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형성된 동독국민의 「사회주의적 인간형」이 통일후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통합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다양한 문제를 분석하면서 그것이 남북한 통일에서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그는 경제적 측면에서 계획경제하에서생활해 「시장의 합리성」에 대한 실질적 경험이 부족한 동독주민들이 시장경제에 편입되면서 일종의 「상실」을 경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또 정치적 측면에서도 관료적 「신민」에서 민주적 「시민」으로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한 동독주민들은 민주적 제도에 대해 회의를 표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교수는 현재 독일이 통합보다 「파괴적-해체적」경향이 주도적으로 나타나는 등 일종의 「전환점」에 서있다고 평가하고 『수술은 성공했으나 사람은 죽었다』는 말로 독일 통일이 드러내고 있는 역설(逆說)을 설명하고 있다.이러한 평가에는 통일의 궁극적목적은 「인간」의 통합이며 통일의 성공여부도 단순한 체제상의 「물리적」 통일이 아니라 인간통합의 성공여부라는 점이 전제돼 있다. 그는 현재 독일에서 이런 부정적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제시되고 있는 여러 대안을 비판적으로 소개하고 「동서독 각자가개혁을 통해 새로운 체제를 창출해가는 모델」을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다.나아가 그는 이 모델을 한국에 대입,「북한사회의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변혁」「남한의자성적 근대화」「하나의 새로운 단위로서의 한국의 공동적 창출」에 의해서만 「통일」이라는 수단과 「인간통합」이라는 목적을 조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예견되는 부정적 현상 때문에 체제통합에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는 극우의 비판과 「반통일적 관점」이라는 좌파의 비판으로부터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이러한 현실에서 지나치게 완벽한통합을 기대하는 전교수의 주장은,토론에 참가한 유팔무교수(한림대.사회학)의 지적처럼 체제통합 위주의 기존 통일론보다 한단계진전된 것이기는 하지만,그것을 실현할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비현실적인 대안 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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