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부자나 들어가는 귀족학교 될 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림동 고시촌에 붙어 있는 사법시험 준비 학원 전단지. 앞으로는 보기 힘들지도 모른다.

이코노미스트 국내 한 대기업 인사팀에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 이하경(32)씨. 명문 사립대 법학과를 나온 그는 재학 중은 물론 졸업 후에도 고시를 준비했다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취업을 선택했다.

결혼하고 아이까지 딸린 가장이 됐으니 청년 시절 가졌던 ‘꿈’은 그저 ‘꿈’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에게 끊어진 듯한 꿈을 다시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로스쿨이다. 사회 경험을 살린다면 고시 포기 후 수년은 결코 잃어버린 세월도 아니었다.

그러나 로스쿨 학원을 찾은 그는 고민에 빠졌다. 꿈을 이루기 위해 드는 경비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의 계산에 따르면 소요되는 순수 경비만 최하 1억원에 이른다.

법대 안 나온 사람은 1억5000만원

“로스쿨 학비만 연 2000만원으로 3년 동안 6000만원이 듭니다. 여기에 각종 학원비가 만만치 않아요. 로스쿨 입학을 위해 드는 학원비가 1년에 최하 500만원, 로스쿨 입학 뒤 3년 동안의 보습학원비 1500만원, 로스쿨 졸업 후 변호사 자격증 시험 준비에 1000만원이 들어갑니다. 적게 잡아 이것만 해도 9000만원인데요, 여기에 교통비에 밥값, 책값을 최하로 1000만원 잡아도 1억원이라는 계산이 바로 나옵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 또 하나를 생각해야 한다. ‘기회비용’이다. 로스쿨 준비야 회사생활과 병행할 수 있다지만 입학 후에는 전적으로 거기에 매달려야 한다. 로스쿨 3년에 변호사 시험 준비 1년을 더하면 무려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연봉을 3000만원만 잡아도 1억2000만원”이라고 말한 그는 “최하 2억원은 있어야 가정을 꾸리며 로스쿨을 준비할 수 있다”며 한숨을 내쉰다. “고시공부할 때는 크게 돈 걱정이 없었는데 로스쿨은 부자나 가는 귀족학교 같다”고 그는 푸념했다.

그는 그나마 법대 출신에 고시공부를 했던 경험이 있어 돈이 덜 드는 편이다. 국내 대학에서 인문학 분야 박사 학위를 갖고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는 박경주(35·여)씨는 “대학에서 자리 잡기도 어렵고 인문학 공부를 법조계에 연결시켜볼 생각으로 로스쿨을 준비하고 있지만 경비가 너무 많이 들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가 계산한 직접경비는 이하경씨에 비해 5000만원 이상 더 많다. 법학에 대한 기초지식이 없어 로스쿨 준비 과정이나 진학 후, 그리고 변호사 자격시험을 위해 더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게다가 로스쿨을 3년 만에 졸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자신도 없다. “이것저것 따져보면 최하 1억5000만원에서 2억원 이상 들 것”으로 내다봤다.

많은 전문가가 사법시험 제도에 비해 로스쿨 제도가 갖고 있는 단점으로 ‘고비용 구조’를 든다. 사시 제도 역시 뽑는 인원수가 제한돼 있어 장기 준비시 적잖은 경비가 들어간다. 하지만 로스쿨에 비하면 큰돈이라 할 수 없다.

한 고시학원 관계자는 “현 체제에서는 적으면 1000만원, 많아야 5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시제도는 대학에 다니면서 준비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졸업 후 수년 동안 준비한다 해도 로스쿨 정도의 경비는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로스쿨이 사시제도의 또 다른 문제인 장기 준비생, 이른바 ‘고시 낭인’의 문제를 해소시켜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고시 낭인은 많게는 대학 졸업 후 사시를 5~10년 정도 준비해온 사람을 가리킨다. 이들은 평생을 고시에 바침으로써 개인적인 낭비는 물론 사회적 문제로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로스쿨 역시 ‘낭인’ 배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의견이다. 이 같은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변호사 자격증 시험 응시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역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현재 고시를 준비 중인 준비생들은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어느 정도 안정궤도에 오른 준비생들에게 로스쿨은 관심 밖이다. 신림동 학원가에서 만난 김형석(28)씨는 로스쿨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

지난해 1차 시험에 합격하고 2차 시험을 준비 중인 그는 “로스쿨이 만들어지는 것은 알지만 아는 것도, 관심도 없다”며 “빨리 2차 시험을 합격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시 준비를 막 시작했거나 1차 시험에 합격하지 못한 준비생들은 적잖은 고민에 빠져 있다. 2013년까지 사시제도가 운영된다고는 하지만 숫자가 줄어들 테고 합격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4학년으로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최석형(23)씨가 대표적인 사례다.

“로스쿨이냐, 사시냐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는 그는 “쉬운 길은 로스쿨이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한다. “웬만한 집에서 1억원을 마련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3~4년 내에 고시에 합격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안 되면 일단 취업을 했다가 로스쿨로 가는 것도 생각 중”이라는 그는 “남자들은 군대 문제까지 걸려 있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제도 변화에 따른 새로운 상황을 걱정했다.

로스쿨에 합격하려면…

영어는 기본…LEET가 결정적 Key

요즘 로스쿨 수험가에서는 ‘스펙(경력·학벌·학점·영어점수)’ 논쟁이 한창이다. 어느 정도 스펙이면 로스쿨 입학이 가능하냐를 놓고 수많은 수험생이 인터넷 카페에서 설전을 벌이곤 한다.

최근 포털사이트 ‘다음’의 주요 로스쿨 카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수험생 470여 명 중 일반 회사원은 45%, 공무원·교사·공기업 직원 등 특정 분야 종사가가 35%, 의사·회계사 등 전문직 종사자가 20%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회사원으로서는 남과 차별되는 스펙을 갖추기가 만만치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스펙을 올려 로스쿨 티켓을 거머쥘 수 있을까. 전형요소별로 나눠 살펴보자.

◇학점= 재학생보다 경력 많은 직장인들이 특히 걱정하는 부분이 학점이다. 요즘 재학생들의 학점관리가 과거에 비해 워낙 철저하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쿨도 신입생 선발시 LSAT(우리의 LEET에 해당) 점수와 학점을 가장 비중 있게 반영한다.

로스쿨을 추진하는 국내 대학도 대부분 학부 성적을 중요하게 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명문·비명문의 벽이 있는 현실에서 학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워낙 높은 스펙의 지원자가 즐비해 학점이 낮다면 치명적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예일, 하버드 같은 명문 로스쿨에서도 “낮은 학점은 LSAT 만점도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학점의 중요성은 크다.

◇LEET= 수험생들이 가장 집중해야 할 시험이다. 많은 대학이 학점과 LEET(법학적성시험·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를 비슷하게 반영하겠다고 밝히고 있는데 이를 오해하는 수험생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학점을 20%, LEET를 20% 반영할 경우 형식적인 비중은 같지만 만약 학점을 18~20점 사이에 분포시키고 LEET는 0~20점에 분포된다면 실질 반영비율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실제 대부분 대학이 이런 식으로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LEET는 객관적인 점수로 측정되는 만큼 공정성 시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학 측이 비중 있게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 결론적으로 수험생들은 LEET에 승부를 거는 것이 바람직하다.

◇논술= 많은 대학이 논술을 신입생을 뽑는 데 중요한 전형 요소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논술을 비중 있게 반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바로 채점의 공정성 논란과, 인력과 시간문제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논술 시험이 있지만 실제로 반영하는 대학이 거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몇몇 대학은 LEET나 학점, 외국어 점수만으로는 당락을 가리기가 어렵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결국 반영하는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으로 나뉠 공산이 크다. 따라서 논술에 자신 있는 수험생들은 논술 비중이 높은 학교를 공략하고 논술이 취약한 수험생들은 논술시험이 없는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영어 능력= 거의 대부분 대학이 ‘통과제’를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의·치대 전문대학원 입시에서도 영어 최저 점수제(토익 750~890점, 텝스 656~824점)를 도입하고 있는데 로스쿨도 이와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수준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이재열 합격의법학원장·modo@soltworks.com

이재광 전문기자[imi@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J-Hot] 로스쿨 입학준비부터 졸업까지 1억이상 든다

[J-Hot] 88 올림픽 때 굴렁쇠 굴리던 그 소년은 지금…

[J-Hot] 애타게 찾던 중동출신 女공작원에 구멍뚫린 美 방첩망

[J-Hot] 'BBK 한글 이면계약서' 도장 새긴 곳 밝혀져

[J-Hot] 서브프라임 덕에 2조5000억원 번 사나이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