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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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54) 어두워오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명국이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하는 말이 야속하겠지만,네가 길남이를 위한다면 그애를보내줘야 한다.그애보다는 네가 겪은 것도 많지 않냐.정은 뗄 수도 있다.그애가 마음 편하게 갈 수 있게 네가 정을 떼어주었으면 했다.그게 그애를 위하는 길이니까.』 제가 무슨 여염집 여자.그럼요.아니지요.어떻게 살아서 여기까지 왔는데요.바람이 화순의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지나갔다.아랫입술을 깨물면서 화순은고개를 숙였다.
기차가 있었지.역에 나가 그 기차를 바라보곤 했었어.그건 그때 어린 나에게는 산이었고 강이었어.
연기를 내뿜으며 귀를 틀어막게 기적소리를 울리며 달려가는 기차를 보면서,이상스레 아이들은 달리는 그 기차를 향해 감자를 먹였었다.손을 치켜들고 기차를 향해 욕을 해대는 사내애들 뒤에서서 그때 화순은 생각했었다.
아냐.난 언젠가 저 기차를 탈 거야.
그리고 그녀는 때때로 역앞에 가서,들어와 섰다가 떠나곤 하는기차를 바라보곤 했었다.역사옆 목책 앞에 서서 바라보는 기차는어린 그녀에게 하나의 산처럼 그리고 강처럼 느껴졌었다.
드높이 앞을 가로막고 서 있는 저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넘어야 할 곳,그러나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가는 알지 못했다.다만 산너머에는 자신이 기다려도 좋을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같았다.기차는 그랬다.그곳을 막아 서있는 높디 높은 산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 산을 넘어갈 수 있는 길인듯이 여겨졌었다.기차저편에는 무엇인가가 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며 그걸 바라보곤 했었어.
『집은 안 보고 어딜 그렇게 나다니나 모르겠네.또 역에 갔다오니?』 『기차 보러….』 고개를 끄덕이는 화순에게 엄마는 말하곤 했다.
『기차 귀신이라도 씌었니?』 기차가 없을 때면 역 사무실에서는 제복을 입고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가 책상에 발을 얹어놓고 졸고 있곤 했다.유리창으로 그걸 들여다보면서 어쩌면 저 아저씨가 졸고 있을 때 역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던날,그날부터 화 순의 마음은 이미 기차를 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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