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 核협정 불만 달래기-美 크리스토퍼 訪韓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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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워런 크리스토퍼 美국무장관이 8일부터 2박3일간 공식 방한(訪韓)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한승주(韓昇洲)외무장관의 방미(訪美)에 따른 답방(答訪)이다.
그러나 그동안 몇 차례나 방한설만 나돌 뿐 선뜻 발걸음을 떼지 않던 크리스토퍼장관이 방한하는 것은 일단 제네바 핵협상 결과에 대한 한국국민들의 불만을 무마하려는 데 큰 목적이 있다고풀이된다.
미국이 협상에서 특별사찰시기를 양보한 것과 관련,한국국민들 사이에서 대미(對美)외교를 전면수정해야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미국은 협상당사자로서 해명할 필요를 느낀 듯하다.
미국에 대한 한국측의 불신감은 핵협상의 성패가 실질적으로 한국과의 공조(共助)에 달려 있다고 보는 미국으로서는 커다란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이를 위해 크리스토퍼장관은 9일오전 韓장관과 회담을 가진 뒤 오후에는 시내 하얏트호텔에서 韓美우호협회(회장 金尙哲) 초청으로「미국의 對아시아관계」라는 주제로 연설할예정이다.이 자리에서 그는 주한(駐韓)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겠다는 美정부의 방침을 밝히면서 대한(對韓)방위공약 불변을 다짐할것으로 관측되고 있다.그러나 크리 스토퍼장관의 이번 방한은 한미양국이 제네바핵협상 타결에 따른 한반도정세의 새로운 판짜기작업에 착수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은다.
정부는 지난 5일 韓장관 주재로 美.中.日.러 4强 주재대사와 학계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정책세미나를 개최한 데 이어 6일 한남동 장관공관에서 주요간부회의를 열어 제네바합의 이후「탈핵(脫核)외교」기조에 대한 손질작업을 벌였다.
정부는 이날 회의에서 북한핵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은 만큼핵문제해결 및 대북(對北)압력에 집중해온 그동안의 외교력을 보다 능동적이고 장기적 안목에 입각한 對4강국.對북한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입장을 정리했다.北-美수교는 곧바로 북한과 일본간의 수교로 이어질 전망이고 남북한 및 4강과의 관계가 새로운 차원에서 전개될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천명했던 미래지향외교,즉 한반도의 평화.안정 유지 및 평화적 통일기반을 조성하고 통일이후시대에 대비한다는 정책을 본격 가동하기 위해 장단기적인외교목표와 정책을 빠른 시일내 마련하기로 했다.
그밖에 장기적으로 남북한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한 당사자가 현정전(停戰)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되 주변4강이 참여하는 東北亞 다자(多者)안보체제를 통해 이를 추인받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이같은 외교기조 전환을 바탕으로 8일 방한하는 크리스토퍼장관과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체제에 대해 깊이있는 논의를 벌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네바합의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하루 빨리 확정지어야 할입장에 있는 한미 양국으로서는 이번 크리스토퍼 장관의 방한을 계기로 이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도 벌이게 된다.
정부는 제네바합의 이후 6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할 북한에 대한 경수로건설계약 시한을 대략▲코리아에너지개발기구(KEDO)구성 2개월▲KEDO 참여국간 입장조정 2개월▲KEDO의 대북계약체결 2개월 등으로 잡고 있다.
또 한미양국은 KEDO의 구성 및 활동이나 성격이 구체화되기전 韓.美.日 3국의 사전 논의가 필요하며 특히 한.미.일의 사전논의 이전에 한미간 사전 입장조율이 어느 정도 마무리돼야 한다는데 공감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8일 최동진(崔東鎭)외무부1차관보를 단장으로 하는「경수로기획단」을 공식발족시킬 예정이고 미국측은 로버트갈루치 핵대사가 크리스토퍼장관과 함께 방한할 예정이다.
결국 이번 크리스토퍼장관의 방한은 그동안 대미관계에서 수세적(守勢的)입장만을 보이던 한국정부가 제네바 합의 이후 후속조치등을 두고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전개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崔相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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