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WTO 반대 있을 수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야당인 민주당이 세계무역기구(WTO)가입 동의안에 대한 전면반대 태도를 완화하는 분위기지만 연말 정국이 파란없이 넘어갈지는 아직 미지수다.또한 우루과이라운드(UR)협정 발효에따라 우리 농업에 가해질 타격에 대한 불안은 우리사회 곳 곳에 잔존하고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WTO 비준동의안에 대한 반대는 시대착오적(時代錯誤的)일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국경없는 경제전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경쟁력을 높이고,제도와 관행의선진화를 이룩하려면 비준동의안은 이번 국회에서 꼭 통과돼야 한다.그래야만 우리는 세계에서 고립되지 않고 보다 자유로워진 국제무역질서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WTO 체제의 출발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많다.UR협정은 이미 잘 알려진대로 국제무역상의 장애와 불공정 관행을 없애려는 국제규약이다.때문에 세계 각국은 관세를 내리고 비관세장벽을 완화하며 무역규제조치를 단순화하고 있 다.한마디로우리의 수출환경이 아주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국토가 좁고,인구가 많으며,자원이 빈약한 우리의 처지를 자주 망각한다.아울러 세계시장을 상대로 생존전략을 추구해야하는 것이 우리의 숙명(宿命)이라는 사실도 가끔 무시한다.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는 나라일수록 국민총생산(GNP )에서 차지하는 수출입의 비중이 높다.우리나라의 경우 63~67%나 된다.무역대국이라도 자신들이 만들어 자신들이 쓰는 나라는 대외의존도가 낮다.미국(美國)이나 일본(日本)은 20%대에 있다.결국새로운 국제무역규범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고,거부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WTO체제의 출범과 함께 내건 우리의 당면 국가목표는 국제경쟁력 강화다.UR협정에는 우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요소가 많다.관세인하,다자간(多者間)섬유협정 철폐,反덤핑이나 긴급수입제한 같은 무역규제조치의 제한, 분쟁해결 절차의 명료화 등은 선진국의 수입규제 남발에 시달려온 우리의 수출환경을 크게 개선시킬 것이다.
물론 UR 타결로 부담도 많다.쌀등 농산물시장 개방은 가뜩이나 취약한 우리의 농업기반을 크게 교란시킬 것이다.노련한 경험을 축적한 외국 서비스업의 상륙으로 우리 서비스 시장이 잠식될수도 있다.각종 보조금제도의 정비원칙에 따라 지 원금.준비금.
공제혜택.손금(損金)산입 등이 단절되는 분야도 적지 않은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영향은 우리 하기 에 따라 그 피해범위를줄일 수 있다.오히려 우리 산업체질을 강화하고,구조조정을 촉진하며,결과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도 될 수 있다.가장 충격이 컸던 쌀등 농산물 시장의 개방도 관세화 유예 기간의 적극 활용과 관세상당치의 적절한 적용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농업 다음으로 타격이 크다는 서비스산업도 이번 기회를 선진화(先進化)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78개 서비스 업종중 이미 73개는 개방을 약속한 것이다.개방화.국제화의 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외풍(外風)에 노출되고 그것을 극복하는 기회 를 갖는 것이 좋다.한국 서비스 시장을 놓고 그것을 잠식하려는 외국업체와 방어하려는 국내업계가 경쟁을 벌이면 소비자도 좋고 경쟁력도향상될 것이다.
이같은 득실(得失)을 종합해 볼 때 UR타결과 이에 따른 WTO체제의 출발을 너무 걱정하는 것은 경제발전의 신화(神話)를창조한 우리의 저력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UR파동으로 이미 농림수산부장관이 두차례나 경질됐고,한차례 전면개각 이 있었다.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UR파동을 겪은 나라며,더이상의 정치적파문은 국력소모밖에 갖고 올 것이 없다.이제는 우리의 저력을 믿고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나라의 산업과 제도등 각 분야의 국제경쟁력은 지금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다.1996년에 선진국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을 당면목표로 삼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또 한차례 도약을 위한 일대 쇄신(一大刷新)이 필요한 때 다.이런 때에 새 국제무역질서를 거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