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2학기 수시 논술 경향 분석해 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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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울대 수시 2학기 논술고사의 지문은 고교 교과서에서 접한 익숙한 내용이었다. 문제는 지문을 바탕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서울대가 논술에서 고교 교과서 내용을 반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문이 익숙하고 문제도 명확했지만 답안을 작성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게 서울대 측 설명이다.

서울대는 29일 인문계열.사범계열(인문).미술대 특기자 전형(264명 선발)에 지원한 수험생을 대상으로 논술고사를 치렀다.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공교육 현장에서 논술에 잘 대비할 수 있도록 하며, 학교 교육을 받으면 논술을 잘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교과서 내용을 대폭 반영했다"고 말했다.

◆쉬운 제시문, 까다로운 논제=이번 서울대 논술 문제의 5개 제시문 중 3개가 고교 경제.사회.세계사 교과서에서 나왔다. 나머지 두 개는 서울대가 자체 개발한 내용으로 제시문 수준이 높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시문 '가'는 고교 경제 교과서에 실린 애덤 스미스 '국부론' 내용의 일부였다. 시장경제와 가격이 결정되는 원리를 다루면서 인간의 욕망.분업.교환.시장.화폐.가격 등 자본주의 시장 경제체제 구성 요소를 다뤘다. 제시문 '나'의 첫 번째 글(서울대 자체 제작)은 사회주의 경제의 자원 분배 효율성 논쟁이 담겨 있다. 두 번째 글(고교 사회 교과서)은 미크로네시아 야프 섬의 돌바퀴 화폐의 사례, 세 번째 글(세계사 교과서)은 서양 중세 봉건사회의 장원 경제, 네 번째 글(서울대 자체 제작)은 시장.화폐.가격과 같은 요소가 존재하지 않는 야마기시즘 공동체 사례를 담고 있다.

이런 제시문에 나타난 주장과 근거를 활용해 까다로운 논제의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답안을 작성하는 게 핵심이다. 사회주의 경제를 포함한 4가지 경제체제의 특성을 조합해 시장경제 체제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대 논술 잘 쓰려면=김 본부장은 "대부분 학생들이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차이를 암기하고 있는데 이런 암기 내용을 중심으로 답안을 써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주장은 있는데 논거가 없는 글은 곤란하다"며 "공동체주의는 인간적이어서 좋다는 등 감성에 호소하는 글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측은 정시논술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통합교과형 논술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연세대나 고려대처럼)갑자기 인문과 자연을 통합하는 식으로 가면 공교육 현장에서는 익숙지 않아 괴리감을 느낄 것"이라며 "지금은 징검다리 정도로 과목별 지문을 혼합하는 형태의 통합 교과형 형식의 문제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는 30일 실시하는 구술면접 점수와 논술 점수를 합산해 합격자를 선발한다. 합격자 발표는 12월 15일.

◆공교육 논술 평가단=대입논술 문제를 심도 있고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중앙일보가 만든 평가단이다. 고교에서 논술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20명으로 구성된다. 국어.사회.윤리 교과 교사는 인문계, 수학.과학 분야 교사는 자연계 논술을 평가한다. 올해 초 교육인적자원부 주관으로 개설된 '2007 중등 논술지도교사 강사 요원 양성 과정'을 마친 교사와 지난해부터 활동했던 중앙일보 공교육 논술 자문단 교사가 중심이 됐다. 평가단은 ▶고교 교과 과정과의 연계성 ▶시험의 난이도 ▶학교 논술로 대비가 가능한지 등 세 항목으로 대학별 논술 문제를 평가한다.

강인식.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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