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8.엉터리 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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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특별 취재팀〉 ▲金英宗차장(팀장) ▲崔永振부동산팀기자 ▲朴義俊경제부기자 ▲李光薰부동산팀기자 ▲洪承一부동산팀기자 ▲申成湜사회부기자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영국군 포로들이 적국(敵國)인 일본군을 위해 만난(萬難)을 뚫고 마침내 완벽한 다리를 건설한다는 내용으로 전 세계인을 감동케했다.
세계 최고임을 자부하는 영국군 공병의 「완벽 시공」에 대한 자존심이 전쟁포로라는 극한상황에서도 부실(不實)공사만은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요즘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각별히 남다른 영화다.
특히 『일본군이 건너올 다리를 우리가 튼튼하게 짓는게 과연 옳은 일이냐』는 장교들의 반발에 대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선량한 이 나라 국민들이 수백년동안 영국 공병을 생각하며 이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란 공병대장(데이 비드 니븐扮)의 말은 「인상적」인 차원을 넘어 옷깃을 여미게 할 정도다.
우리의 딸과 아들들이 건너다니는 다리마저 제대로 만들어 놓지않는 오늘의 우리 모습에 이르면 선진국이라는 것이 그저 국민소득이 얼마 올라갔다고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자괴감에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부실요인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발주.입찰.계약.감리.준공에 이르기까지 끝간데 없지만 이 모든 것의 귀착점은 바로 감리다.
지난달 13일 히로시마에서 벌어진 아시안게임 축구 준결승전에서 우리 팀은 우세한 전력을 바탕으로 전반초부터 우즈베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으나 우즈베크의 골키퍼 쉐이킨의 철벽수비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필드에서 아무리 슛을 날려도 골키퍼가 빈틈을 보이지 않으니 손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건설에서의 감리는 바로 축구에서의 골키퍼와 같다.
감리가 한치의 빈틈도 주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자재를 빼먹고 대충 공사하면서 돈을 남길 수 없으니 덤핑입찰이나 부실시공은 생각도 할 수 없게 된다.국내에서는 죽을 쑤고 있는우리 건설업체들이 해외건설현장에서는 세계적 수준 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이것은 선진국 감리업체들이 그만큼 꼼꼼하게 챙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각별히 원리원칙이 존중돼야 하는 감리에서도 선진국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뇌물이 예사로 오간다.성실시공의 최후 보루인 감리조차 만사를 돈으로 때우려는 시공자와감독관의 유착에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면서 우리 건설업은 마치골키퍼가 없는 축구경기처럼 난맥상을 보이게 된 것이다.
S건축설계사무소 Y씨(47)는 85년 H건설이 시공한 A아파트 신축공사 감리업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 시공사가 기초바닥의 철근을 설계도면에 기재된 것보다 적게 넣어 이를 강력히 지적하다 본사로 소환당했다.현장소장이 돈봉투를 주며 회 유와 협박을하는데도 끝내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자 시공사인 H사와 발주기관인 G공사가 본사에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모난 돌이 정맞는 줄모르고 고지식하게 원칙에 충실하다가는 이런 꼴을 당하기 십상인것이 우리 감리업계의 현실이다.
90년 민간 전문감리제도가 본격 도입됐다고 하지만 아직도 발주기관이나 시공회사쪽에서는 법조문에 있으니까 어쩔 수 없이 공사현장에 세워놓는 「허수아비」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태반이고,감리업체 역시 『지적해봐야 어차피 안통한다』는 패 배의식이 오랜 경험과 관행을 통해 굳어져 있는 실정이다.올들어 감리회사에공사중지.재시공명령권을 부여했지만 이 강력한 보도(寶刀)를 휘두른 업체는 아직 한군데도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해 준다.
S종합감리회사 K사장(57)은 『올해부터 그동안 감독관이 하던 업무를 감리자에게 위임하는 전면 책임감리제가 도입됐지만 업무연락관이라는 직책으로 공무원이 계속 공사현장을 감독하고 있어종전의 관행이 바뀌지 않은 상태』라며『특히 교체 권한을 갖고 있는 업무연락관은 감리원이 말을 제대로 안들을 경우 언제든지 감리자를 바뀌 치울 수 있게 돼있다』고 지적했다.
서울지하철 D건설 공사현장 책임감리자 P이사는 터널공사의 무너짐 방지를 위한 쇼크리트공사와 지보공 설치문제를 철저히 할 것을 지적하다가 『나이도 어린 현장소장이 가뜩이나 공기가 지연돼 있는데 왜 자꾸 까다롭게 구느냐』며 『감독관청 에 연락해 바꿔버리겠다』고 협박해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껄끄러운 감리원은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다는 책임감리제의 허점이 이들을 계속 오만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실공사는 민간공사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
신도시 아파트에서부터 고층빌딩은 물론 다세대.다가구주택등 소규모 건물 곳곳이 부실 투성이다.건축주는 설계비와 별도로 감리비를 지불하지만 감리자가 시공자와 공모,부실공사로 돈을 떼먹 는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경우도 있다.
T건축의 J씨는 『서울보광동 다가구주택 감리를 맡을 때 지하층을 제대로 파지 않은 것은 물론 자재등을 제대로 쓰지 않아 실제 계약때의 공사비보다 평당 10만원을 적게 들이도록 협력했다』며 『다가구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이 시공사는 설계일감을 우리사무소에 대량 제공하고 있어 시공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자기가 설계한 건물의 감리는 자신이 직접 할 수 없고 대신 지역별로 등록된 감리 건축사들이 순번에 의해 돌아가며 일을 맡고 있지만 정작 책임자인 건축사는 한번도 나가지 않고 경험이 적은 직원을 대신 내보내 형식적으로 현장 체크를 맡기는 풍토에서 부실공사 방지는 요원하다는게 양식있는 건축사들의 지적이다.
팽팽한 긴장상태를 유지해야 할 시공과 감리의 관계는 아직도 상당부분 「누이좋고 매부좋은」사이로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된 이른바 「월례비」「떡값」등의 촌지관행도 90년대 이후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아직 곳곳에 뿌리깊게 남아있다는게 업계 관련자들의 한결같은 증언이다.
구조물 안전진단업무를 오랫동안 해와 감리업계 사정에 정통한 현직교수 A씨는 이같은 검은 돈 수수관행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웬만한 큰 공사에는 액수차이는 있지만 통상 매달 감리자몫으로 정해진 월례비(月禮費)라는 게 있습니다.통상 20만~30만원에서 많으면 감리원이 설계사무소로부터 받는 월급보다 더 많을 경우도 수두룩하죠.』 ***월20~30만원 떡값 건설관련공무원들의 뇌물수수 액수가 크고 적극적으로 돈을 요구하는 측면이 강하다면 감리원들의 그것은 액수가 적고 다소 수동적인 성격이 많다는 차이가 있을 뿐 검은 돈이 오가는 것은 예외일 수 없다. 감리업계에도 문제가 많다.설계는 물론 시공기술에 대해 현장 기술자보다 더 많이 알아야 정확한 감리업무를 수행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험이 빈약한 사람들이 감리원으로 등록돼 있고 그나마 월급이 많은 건설회사를 선호하는 풍토속에 사 람 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이에 따라 무능력 감리자가 양산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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