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떠난 자와 남는 자(47) 『태성이야….
』 바다를 내려다보면서 명국이 말을 이었다.
『그 녀석이야 그릇이 있는 아이니까.그거야 걱정 안해도 되지않을까 싶다만.』 『그런 뜻이 아니에요.』 『그럼?』 『그 애가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이제까지 나한테는 말이 없었느냐는거지요.』 『녀석아.그게 어디 내놓고 할 말이냐?남자 여자 이야긴데.안 그렇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네가 너무요란스러웠나 보지.』 조용조용 웃듯이 명국이 말했다.엎드린 길남의 머리를 쓰다듬어 가면서.
『그리고,그런 소문은 네 마음으로 나고 안 나고 하는게 아니다.남들이 만들어 내는 거지.』 『그런 게 아니고,언제 또 어떻게 걔가 나 모를 소리를 할까.그런 애와 함께 움직여도 될까그게 두려운 거지요.』 『아저씨,그런데 정말 이런 말을 해야 할지 안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또 무슨 소리?』 『제가하는 일이 아저씨한테 정말 사람으로 못 할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지요.그래서 차라리 여기 남을까 하는 마음까지 드는 거예요.이래 가지고 무슨 사람 노릇을 하겠어요.』 길남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명국이 말했다.
『됐다,녀석아.』 『되긴 뭐가 돼요.』 『길남아.』 낮은 목소리로 명국이 길남을 불렀다.길남이 고개를 들며 명국의 야윈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생각은 말아라.이제 와서 너랑 나에게 무슨 탓할 말이있으며 뉘우칠 일이 있겠니.다만….』 명국이 잠시 말을 끊었다. 『다만 말이다.그르쳐서는 큰일 날 일이라는 거,그것만은 마음에 새겨야 한다.옛말에 이런 게 있단다.밤 잔 원수 없고 날샌 은혜 없다고 했던가.아무리 가슴 맺힌 일이라도 다 잊게 된다는 소리 아닌가 싶다.그렇지 않니?』 명국이 길남이 어깨를 내려다보았다.젊은 몸,한참 일할 게 남아 있는 젊은 몸이다.그렇다면 가야한다.그 몸으로 가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