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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치킨 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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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 조류독감 탓에 닭고기 소비가 많이 감소했지만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여전히 닭고기 요리를 즐긴다. 13일 서울 효자동의 한 삼계탕 집에 점심식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있다. [신동연 기자]

'오늘은 가족.연인들과 함께 치킨을'.

밸런타인데이인 14일 초콜릿 대신 치킨을 선물하고 같이 먹자는 운동이 인터넷에서 일고 있다.

밸런타인데이를 아예 '밸런치킨데이'로 바꾸자는 운동이다. 조류독감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양계 농가와 치킨집을 돕자는 취지다.

이 같은 바람은 '노빠'(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의 속칭) 그룹 중 하나인 '서프라이즈' 소속 한 네티즌이 최근 '밸런치킨데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시작됐다. 이 글은 국내 최대 포털인 다음과 네이버, 뉴스포털 도깨비, 개인홍보사이트인 블로그 등에 게재돼 있는데 내용이 흥미롭다.

예컨대 떠나려 하는 연인에게 닭을 먹이면 문제 없다고 한다. 닭을 먹으면 닭처럼 날지 못하기 때문에 '걱정 끝'이라는 것이다. 연인이 잔머리를 굴려 속이 상할 때도 닭이 즉효약이라는 내용도 있다. 사랑에 관한 한 연인이 닭대가리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

여기에다 사귄 지 얼마 안 돼 어색한 연인들이 치킨 껍데기를 먹으면 주위사람들도 징그러워 하는 '닭살'커플이 된다고 했다.

궁합이 안 맞으면 치킨과 함께 맥주를 마시면 된다는 내용도 있다. 치킨이 맥주 한잔에 시원히 목을 넘어가며 궁합 맞는 커플로 변한다는 해석이다.

다음의 80여 카페에는 이 글을 그대로 게재, 회원들에게 동참을 호소하고 있고 대부분의 회원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아예 이 글을 가사 삼아 밸런치킨데이 노래를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하고 있다.

"연인이 바람기가 있습니까. 닭을 먹이십시오. 닭은 날아가지 못합니다. 연인이 약해보입니까. (튼튼한)닭다리를 먹이세요. 연인이 적극적이지 못합니까. 닭을 먹이십시오. 그러면 꼭끼워 안아줄 겁니다…."

이 같은 네티즌들의 운동 덕인지 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13일 서울시내 삼계탕집과 치킨집은 모처럼 손님들로 붐볐다.

다음카페인 '임진년 용띠사랑방'의 한 네티즌은 "양계농가가 어렵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너무 착잡하다"며 "비싼 외화를 들인 초콜릿보다는 이날 연인과 함께 닭요리를 먹겠다"고 말했다.

서울 등 대도시 치킨집 주인들도 이에 보답, 14일 가게를 찾는 고객들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로 했다.

대한양계협회 김동진(38) 홍보차장은 "네티즌들에게 감사할 뿐"이라며 "이날 하루에 그치지 않고 농민들을 돕는 운동으로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형규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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