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터스, 여러분은 변치않는 황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Sisters(자매님들)".

미국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주도한 마이크 혼다 의원이 26일 경기도 광주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방문해 강일출 할머니와 인사하고 있다. [사진=김상선 기자]

26일 낮 12시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인 '나눔의 집'을 찾은 마이크 혼다 미국 하원의원은 정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던 할머니들을 보자마자 이렇게 부르며 반갑게 포옹했다. 혼다 의원은 7월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앞장섰던 일본계 미국인이다.

나눔의 집 대표인 송월주 스님은 혼다 의원에게 강일출(79) 할머니 등 다섯 명의 할머니를 차례로 소개했다. 애초 이곳에 살고 있는 할머니 9명이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병원에 입원 중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섯 명만 나왔다.

나눔의 집은 생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모여 살고 있는 터전이다. 1998년 독지가와 일반 시민 그리고 뜻있는 일본인의 성금으로 건립됐다.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회복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도 같이 있다.

혼다 의원은 대화 내내 할머니들을 'sisters'라고 부르며 친밀감을 표시했다. 그는 "여러분은 황금(gold) 같은 존재다. 아름답고 강하기 때문이다. 금은 녹을지언정 변하지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결의안 통과를 주도하는 데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여러분의 용기로 인해 (미 의회에서) 싸울 수 있었다"며 "여러분의 증언이 없었다면 결의안이 통과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의안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결의안 이행 문제에 대해 "결의안은 법적 효력은 없으나 일본 정부와 국민이 스스로 변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처음에 혼다 의원과 쑥스럽게 포옹을 했던 강 할머니는 곧 "일본인 소수가 나쁘지 다 나쁜 것은 아니다"며 "끝까지 관심을 갖고 위안부 문제를 매듭지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식사 자리에는 2월 미국 하원에서 일제의 만행을 생생하게 증언했던 이용수(79.대구시) 할머니가 동석해 혼다 의원과 재회의 기쁨을 나누기도 했다.

◆나눔의 집 역사관에 큰 관심=혼다 의원은 식사에 앞서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을 찾았다. 일본인 자원봉사 연구원인 무라야마 이페이(27)의 안내로 40여 분간 둘러봤다.

역사관에 전시된 할머니들의 사진 앞에서는 하나하나 설명을 요청했고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생전 증언의 한 구절이 적힌 팻말('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한 그 일을 역사에 남겨 두어야 한다')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결혼하지 않고 45년간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살았던 김 할머니는 91년 국내 최초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했고 혼다 의원이 미 하원 최초로 위안부 결의안을 통과시키게 한 계기가 됐다.

송월주 스님은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결의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노력에 감사의 뜻을 표한다"며 혼다 의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고 김순덕 할머니가 생전에 그린 '못다 핀 꽃'을 복사한 액자를 선물했다. 혼다 의원은 명함케이스로 답례했다.

혼다 의원은 방명록에 '당신들의 강인함(strength)과 나눔(sharing)에 감사드린다'는 글귀를 남기고 오후 2시30분쯤 나눔의 집을 떠났다. 그는 2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간담회와 시민단체 좌담회에 참석하고 28일 연세대 초청 강연을 한 뒤 출국한다.

◆마이크 혼다=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 올 7월 미 하원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정부의 종군위안부 동원을 비난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데 주역을 맡았다. 일본계 3세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 정부가 일본계 미국인을 격리 수용한 콜로라도 집단 수용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3년 수용소에서 나온 그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정영진 기자 , 사진=김상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