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중립적인 검찰권 행사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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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고 권부(權府)인 청와대가 국민적 관심을 끌고있는 성수대교수사에 대해 언급하면서 전.현직 서울시장을 소환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발표한 것은 그동안 권위주의 체제에 살아왔던 우리에게는매우 익숙한 관행이다.
그러나 수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특정인의 소환조사 여부에 대해서까지「감 놓아라,대추 놓아라」하는 식으로 공개적인 의사표시를 하는 것은 독립적이어야 할 검찰권 행사를 지나치게 침해하는행위가 아닐 수 없다.
청와대가 26일『이신영(李臣永)도로국장이 성수대교 붕괴위험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어 당시 副시장이었던 우명규(禹命奎)現시장이나 이원종(李元鐘) 前시장을 소환조사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검찰수사를 종결하라는 사실 상의「주문」이나 마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 발표가 있은뒤 검찰은『서울시 도로국 관계자들을 조사한 결과 李前시장과 禹現시장이 붕괴위험 보고를 받고도 이를 묵살한 혐의(직무유기)를 발견하지 못해 현재로선 이들을 소환할 계획이 없다』고 청와대 발표내용에 화 답(?)하고나섰다. 이는『수사에 관련된 위로부터의 주문은 전혀 없었으며사법처리 대상에는,제한을 두지않겠다』며 적극성을 보였던 수사초기 검찰의 태도와는 무척 대조적인 것이었다.
물론 혐의가 드러나지 않는 사람을 무리하게 잡아 가두고 조사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검찰권의 행사는 항상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오직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의 법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청와대등 다른 외부 권력기관이 이에 대해 외압(外壓)이나 주문을 넣어서는 곤란하다.
청와대는 지난 3월 상문고 비리가 본지의 특종으로 드러났을 때도『교육부 감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검찰이 즉각 수사에 착수하라』고 지시하는등 큰 사건이 터질때마다 검찰에 일일이 주문을 내렸다.
이는 최고권력기관으로서 당연한 관심일지 모르지만 공개적인 의견표시는 냉정해야 할 검찰에 부담을 안겼고 때로는 검찰권 행사의「잣대」를 흔들리게 하는 부작용을 낳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검찰이 사정의 중추기관으로서 권위를 갖지 못하는 것은 정치자금 수사등 정권의 비위를 건드릴만한 사건은 여론이 아무리 들끓어도 아예 건드리지도 않는등 정권의 뜻에 따라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고질적인 행태에 큰 원인이 있다.
그러나 검찰내부의 노력과 함께 검찰권의 고유영역을 인정하고 이를 존중하는 정권내부의 인식전환이 선행되지 않는한 공정하고 중립적인 검찰권 행사는 실현되기 힘든 헛구호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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