端宗의 애절한 영혼 잠든곳 강원도 영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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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 어린나이에 사약을 받아 마셔야 했던 조선시대 비운의 왕 단종(1441~1457)의얘기를 접하고 한번쯤 눈물을 삼키지 않은 한국인이 있을까.그러나 한때 주검조차 강물에 내팽개쳐져야 했던 그의 애절한 영혼이잠든 곳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강원도 영월은「단종애사(哀史)」가 가을빛인양 침잠해 있는 곳이다.또 임진왜란때 고씨(高氏)일가의 피난지로 쓰였다는「고씨동굴」이 남한강 상류 산등성이에 깊이 숨어 내밀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앳된 소년같은 17세의 단종이 1년여의 유배생활끝에 한많은 세상을 등진 10월 마지막 주.그의 무덤인 장릉에는 유난히도 빛고운 단풍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영월군청에서 1㎞남짓 떨어진 영월읍 영흥12리에 위치한 장릉은 그러려니 여겨서인지 숱하게 보아온 다른 왕릉에 비해 훨씬 애조를 띠고 있었다.
5백여년전 죽음과 함께 근처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이 그를 흠모했던 영월 호장(戶長)엄흥도(嚴興道)에 의해 거두어져 몰래 암매장됐던 곳.
그리고 세월이 지나 강봉됐던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복위돼 비로소 능으로의 모습을 갖춘 장릉이 자리한 둔덕은 유달리 높았고 말끔하게 씻은듯한 봉분은 입구쪽을 비켜앉아 딴곳을 응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봉분주위에는 그의 저승길 친구인 동물석상이 늘어서 있었지만 무력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영혼을 달래려는듯 어느 왕릉에서나 볼 수 있는 무관석상은 보이지 않았다.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는 사면이 강과 절벽으로 둘러싸인 육지속의 섬.군청에서 남쪽으로 3㎞거리인 남면 광천리에 자리한 이곳에 가려면 청령포가 마주 보이는 남촌 휴게소앞에서 폭1백여m되는 강을 건너야 한다(도선료는 5백50원).양쪽 강변에 철선을 매어놓아 노를 젓지 않고도 철선을 잡아당겨 강을 건너게 돼 있다.어린 단종에게 천길 낭떠러지 같은 단절감과 외로움을 안겨줬을 청령포는 도시관광객에게는 더할 수 없이 쾌적하고조용해 눌러앉아 있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 .
단종의 유배생활을 지켜보았다는 6백년 묵은 노송 관음송(觀音松)등을 접할 수 있다.단종의 거처 흔적을 알리는 비석과 백성들의 접근을 막기위해 세웠다는 이끼낀 금표비(禁標碑)도 이 섬의 정적을 깨뜨리지 않으려는듯 숨을 죽이고 있다.
***고씨(高氏)동굴 영월이 자랑하는 또 다른 명소는 고씨동굴이다.하동면진별리 남한강변 바위산에 보일듯 말듯 그 입구를 드러낸 고씨동굴은 약 4억년전에 생성된 길이 6.3㎞의 석회암굴이다.영월읍에서 595번 지방국도를 타고 단양쪽으로 내려오다12㎞지 점 강건너에 위치한 이 굴로 들어서려면 폭 1백40m인 남한강상류를 배로 건너 접안해야 한다(도선료포함 입장료는 1천2백원).
한가로운 강촌마을에다 병풍처럼 들어서 있는 준봉들에 둘러싸인고씨동굴 주변은 복잡한 심사를 탁 트이게할 정도로 훤하고 시원하다.임진왜란전까지는 노리곡굴이었으나 왜란당시 고씨일가가 이곳에 피신했다해 고씨동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부분은 7백50m정도.미로같은 오묘한동굴길과 다양한 모습을 한 석순등 자연이 빚은 거대한 걸작품에찬사를 금치 못하게 한다.
[寧越=高惠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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