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모스크바權府 파워게임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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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2주 사이 모스크바에서의 정치는 매우 중요한 양상을 띠었다. 이 정치양상은 루블화의 폭락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고 이루어졌다.
11일 루블의 대 달러 환율은 약 30%나 떨어졌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모두가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는 세르게이 두비닌 재무장관을 해임했고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공식적으로 독립기구인 중앙은행장 빅토르 게라셴코를 사퇴시켰으며 돌아가는 상황을 음모적인 것으로 비난하고 몰아쳤다.
음모설은 특별위원회의 행동좌표로 남아 이 음모에 가담한 자의면면을 밝혀내도록 압박을 가했다.
경제분석가들은 루블 폭락사태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장기간 고정해 온 결과 나타났다고 분석하고 있다.
루블의 평가절하를 일관되게 권해 왔던 중앙은행은 10월초부터평가절하 작업을 단행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꺼번에 많은 원인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루블의 하락으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또는 이익을 얻는 2개의 정치세력이 이번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첫번째 세력은 현 빅토르 체르노미르딘 총리로 대표되는 구 각료출신,거대기업들의 대표자 그룹이다.
그들은 중요한 외화수익 물품들인 가스.석유.석탄 등 원자재의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두번째 그룹은 급진개혁그룹이다.이들은 옐친이 버렸지만 옐친 주변으로 돌아가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로 예고르 가이다르.
보리스 표도로프 등이다.
지금까지 입수된 정보에 의해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기집단과 정부를 위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체르노미르딘그룹은 루블하락을 통해 일부 재정적자를 보전하려 했다.
이때 이런 일이 조만간 일어나리라고 예상하면서 대비하고 있던가이다르 그룹은 이 사실을 포착하자 동시에 자신들이 준비하고 있던 루블을 외환거래소에 대규모로 쏟아부었다.
그 결과는 루블의 대폭락이었다.
그러면서 가이다르 그룹은 곧 정치적인 공격을 시작했다.정부,특히 체르노미르딘 총리와 게라셴코 중앙은행장의 투기적 게임을 집중적으로 비난했다.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모든 수단을 동원해 체르노미르딘에게 죄를 뒤집어 씌웠다.
동시에 가이다르가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대중매체를 통해 체르노미르딘의 사임표명 정보를 흘렸다.
옐친과 체르노미르딘은 이러한 보도를 즉각 부인했지만 누구도 이를 믿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대통령의 사회적 기반은 약화돼 있었다.
정치적인 기반도 극도로 줄어들었다.옐친 권력의 생존자체를 의심쩍어 하는 얘기들이 오가고 있을 정도다.
오늘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가까운 시일내에 러시아 정부의 대대적 변화가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총리의 경질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옐친에겐 다른 대안이 없다.
체르노미르딘을 그대로 둔다면 옐친에게 이익이 되기는 하겠지만급진개혁파로부터의 지지를 결정적으로 상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2주후쯤이면 이들 2개의 그룹간에 자리차지를 위한 투쟁이 격화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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