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죽음부르는부실공사관리>4.입찰비리 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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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나라 건설업계에서 제5공화국 출범 3년째부터인 84년과 85년은「아주 특별한 해」로 기록된다.
해방후 덤핑입찰이 가장 극에 달했던 해라는 점에서다.
전혀 대형 토목공사를 해본 경험이 없는 건설회사가 예정가의 3분의 1가격에 공사를 하겠다고 덤비는가 하면,터무니 없이 싼값으로 공사를 벌여놓고도 관련관청 공무원은 물론 정치권에까지 거액의 뇌물을 바치며 이익을 내는「시공술의 귀재 」들이 속속 탄생했다.
그러나 덤핑공사를 하면서도 이익을 챙기는 기막힌 실력뒤엔 감독관청의 묵인 내지는 적극적인 유도하에 이루어지는「설계변경」이라는 아주 간단한 묘수(妙手)가 도사리고 있었다.
발주처 고위관리들은 공사를 싸게 맡김으로써 국민이 낸 세금을아낀체 해야 출세에 지장이 없고, 이같은 공무원 사회의 잘못된풍토는 아주 당당하게 업체들로 하여금 저가낙찰을 하지 않을수 없도록 강요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업자는 업자대로 약아지지 않을수 없게 돼 갔다.일단 공사를 따놓고는 발주처 공무원들을 구워삶아 공법을 바꾼다든지,구조.자재를 공사비가 많이 나오도록 바꿔치기해 정부돈을 왕창 긁어내는 수법을 구사하기 시작한 것이 다.
애초에 편법으로 시작된 공사니 담당공무원이 바뀐다한들 거저 설계변경을 해줄리 만무하다.간단히 말해 공사를 싸게 맡긴체 해서 생색낸 세금 이상을 업자로부터 뜯어 착복하는 관행이 당연시됐던 것이다.
여기에 국회의원 보좌관.경찰.사이비 기자들에 이르기까지 쥐꼬리만한 힘만 가졌다하면 염치 불구하고 파리떼처럼 달려들었다.
시작부터 비뚤어진 이같은 대형공사는 어떻게든 돈만 벌면 된다는 업자의 비양심,시민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뇌물을 덥석덥석 먹어치우는 정치권및 고위 관리들의 파렴치가 사슬을 이뤄 성수대교가 안 무너지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덤핑수주 관행은 최근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와 실제로 작년에 발전소공사 수주실적이 전무한 L사는 D사가 1차분 공사를 한 수도권 신도시의 열병합발전소 증설공사를 무려 예정가 대비 41.6%에 덤핑입찰,공사권을 따냈다.
또 K사는 군장(群長)국가공단 호안공사를 예가(豫價)의 3분의 1수준인 33.6%에 따내 현재 공사를 진행중이고 D사도 분당신도시 정보통신센터를 예가의 58%에 공사를 맡아 시행중이며 또다른 K사는 서울지하철 공사를 49.4%에 맡아 발주기관을 당황하게 했다.
이들 덤핑입찰사는 입찰자격 심사제(PQ)강화를 대비한 실적쌓기와 앞으로 나올 후속공사를 감안,싼값에 입찰하게 된 것이라고해명한다.
84년 H사는 서울의 대규모 예술 문화시설 건축공사 토목 1차공사를 낙찰률 56.8%(9억4천만원)에 따낸후 뒤이어 1천4백여억원에 달하는 후속공사를 좋은 조건으로 확보했다.얼마 안되는 1차분 공사를 미끼로 해 엄청난 이익금을 챙 긴 것이다.
덤핑공사가 엄청난 황금알을 안겨주기까지 정치자금외 발주자에게뿌려진 뇌물만도 수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작년에 분당의정보통신센터 신축공사를 덤핑으로 따낸 D사는 2개월후 같은 기관이 발주한 서울 정보통신센터를 무려 99%에 공사권을 따내 주목을 끌었다.D사는 발주기관과의 유착과 관련업체들의 협조로 정보통신센터관련 공사를 시리즈로 수주,일부 덤핑으로 인한 적자분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수법을 썼다.덤핑으로라도 일단 한곳의 공사만 따놓으면 동종(同種)의 공 사에 대해선 연고권이 확보되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알짜로 공사를 수주,최초의 덤핑손실분을 회수하고도 남는 것이다.
덤핑입찰이 극에 달했던 5공화국 시절 발주된 인천 남동공단 부지조성공사를 비롯,각종 도로.다리.택지개발공사등 수익성이 있다 싶은 공사는 대부분 낙찰률이 40~60%선까지 떨어졌다.해외공사에서도 엄청나게 손해를 본 처지에 자기돈을 대가면서 완벽한 공사를 할 여유가 없었으나 관련업체들은 외견상 공사를 아무탈없이 마무리 했다.
바로「아무 탈없이」해온 부실이 지금와서 성수대교 붕괴와 같은참사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업체들의 또다른 수주비리는 연고권을 앞세운 담합이다.최근 백제교공사 담합과 관련,삼부토건 수주담당 임원이 검찰에 구속되고여기에 동참했던 대기업 담당자들이 무더기 불구속되는등 그동안 담합과 관련한 비리가 심심찮게 발생했다.
대형업체들은 서울지하철공사와 같이 한꺼번에 여러공구가 나오는공사는 아예 돌려가며 밀어주기식 담합을해 덤핑공사와 대조적으로낙찰률 95%이상 높은 가격에 공사권을 따내는 수법을 동원한다. 중소업체 수주비리는 극에 달해 조달청이나 시.군.구청의 입찰장소에 아예 경쟁업체의 입찰방해를 하기 위해 폭력배들이 공공연히 등장하는 경우도 많다.
작년에 서울의 한 구청 수방시설공사를 업체들의 담합에 의해 공사를 따낸 중소업체 M사의 K사장은『30억원짜리 공사를 후하게 딴후 이중 5%정도를 담합에 협조한 경쟁사들에 나눠주었다』고 말했다.공무원들이 예정가를 업체에 흘려 이권을 챙긴다면 업체들은 담합을 통해 이문 나눠먹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오너가 직접 로비 대형업체들 가운데 오너인 회장은 정치권과 결탁,공사를 따내고 수주담당 임원들은 사후 말썽이 나지않도록 관련업체 수습에 나서는 전략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도급순위 10위권내 업체인 D사의 C회장은 5공시절 임원회의에서 공공연하게『내 가 공사영업 업무를 직접 수행할테니까 여러분들은 사후관리나 잘하시오』라고해 수주담당 임원들은 입찰전 협조를 잘해주지 않는 업체 관계자를 찾아다니며 떡값을 전달하곤 했다는게당시 D사로부터 봉투를 받은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D사의 C회장은 5,6공시절 청와대를 뻔질나게 드나들어 5조원에 달하는 원자력 발전공사를 비롯,엄청난 관급공사를 무리없이따냈고, 이에 협조한 일부 경쟁사 관계자들은 앉아서 재미를 톡톡히 본것으로 알려졌다.결국 관은 관대로,업계는 업계대로 먹이사슬을 형성,저마다 배를 채우는 동안에 쇠다리가 어이없이 무너져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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