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무너진 다리 구멍난 한강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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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국에서 온 방문객을 뉴욕공항에서 태우고 맨해튼 북단으로 차를 몰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작년에 왔을 때도 공사가 한창이던데 여지껏 이 모양 이 꼴인가.』허드슨강의 샛강다리를 건널라치면 으레 공사판이 벌어져 울퉁불퉁 불편을 겪기 일쑤 기 때문이다.『이 사람들은 공사감리가 까다롭고 안전제일주의입니다.차량집중도를 시간별로 점검하는등 무척 더딘 편이죠.』『아니야.요까짓 공사,한국업체에 맡기면 후다닥 밤을 밝혀서라도 거뜬히 해치울텐데.』사우디 고속도로며 주베일항만공사등 세계 적으로 떨친「건설한국」의 성가를 모르느냐는 말투다.
허드슨강에 걸린 무수한 다리들은 거개가 1백년이 넘은 구닥다리들인데 15년 남짓이 안된 새다리가 서울 한복판에서 내려앉았다는 사실은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외국에서는 늙은 다리라도 예스러운 운치가 있어 사랑받는 다리로 미관과 안전성 을 잃지 않도록 쉴새없이 손질한다.큰 다리들은 강변의 기적을 상징하는 기념비같았다.그 다리의 상판이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쳤다는 뉴스는 지진과 같았다.온갖 역경을 딛고 지구촌 곳곳에서 땀흘리며 사는5백만 해외동포들의 어깨가 축 늘어지 던날이었다.
올림픽을 치른 선진국의 국위가 그 가련한 대교의 상판과 함께바닥에 꼬라박는 강진이었다.궂은 소식은 발빠르게 퍼진다더니 성수대교 참사뉴스는 삽시간에 지구촌을 돌았다.차라리 천재(天災)였으면 나았으리라.
인재(人災)의 본보기여서 더 욱 안타까운 이 뉴스는 하필 TV시청률이 가장 높은 저녁뉴스시간대에 미국인의 안방에 날아들었다.CNN방송을 비롯,채널마다 씹고 되씹으며 일그러진 한강다리의 모습을 비쳐대는 그 슬프디 슬픈 서울발 뉴스는 동포들의 억장을 메이게 했다.
우리나라의 해외 주재원들은 국산차를 사서 귀국할때 이삿짐으로가져가는 것이 언제부턴가 유행처럼 되어있다.알고보니 같은 쏘나타라도 국내 것보다 해외에 나와있는 것이 단단하게 만들어진 때문이라는 것이다.이번 한강의 참사로「건설 한국」의 이미지에 먹칠했다지만 속사정은 다르다.국내 건설에서는 30%에서 최고 50%까지 뜯겨 거의 절반액으로 아슬아슬하게 공사를 때우지만 해외건설에서는 뇌물이 통할리 없기 때문에 에누리없이 재료를 쏟아넣어 부실공사란 원천적으로 있을수 없 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강변의 기적이 일 무렵엔 중동건설붐을 타고 우수인력과 장비가 해외로 빠져나가 무녀리들이 남아 건설을 도맡았다 하니 일등교(一等橋)는 해외에 나가 짓고 국내에서는 열등교만 지었단 말인가.강변의 기적은 이제 살얼음판을 지치듯 강건너기의 기적에 목숨을 걸판이다.강물에 숨진 한 소녀가 죽기전 아버지에게 썼다는 편지가 애처롭다.『아버지,사랑의 매 감사합니다.자식을 때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맞는 저보다 백배 천배 아팠을 것입니다.』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매를 맞겠다는「어른」은 보이지 않고 네탓 내탓 책임 떠넘기기의 핏발선 삿대질 뿐인 현실이다.70년대의 시공자들은 과적차량을 예상하지 못한 20년 세월을 탓하지만 60년전에 세운 한강대교는 끄떡없다니 자가 당착에 빠진 자신들이 부끄럽지도 않은가.국제화다,신한국 건설이다 겉치레 구호부터 조용히 거둬들여야 한다.「수면에 붕뜬 채 마대에 묶인 교각」위에 무엇을 건설하겠다는 말인가.돈만 있으면 통일도 사겠다는 환상에서도 깨어나야 한다.구석구 석 썩고 무너져내린 모습으로는 흡수통일과 거리가 멀다.북과의 경협(經協)만해도 문명사회의 강한 메시지가 담기지 않은 교류는 강물에 삭아내린 교각의 허상을 떠올린다.
서양에서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원점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asic)고 벼른다.나라의 기틀(國基)을 마로잡기위해 주춧돌을 다시 놓아야 한다.땜질일랑 말고 헐어내 다시 세운다는 각오다.독일통일의 진정한 교훈은 통일비용 이 아니라 피히테가 부르짖은 도덕찾기 운동이 밑거름이 되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독일 국민에게 告함』-베를린대 총장에 취임하기전 큰 스승이 행한 이 강연은 찌든 부패와 도덕상실의 중병을 앓고 있던독일 사회를 교육개혁으로 혁파하려는 국민의 자각운동에 불을 댕겼다.마침 고려대 홍일식(洪一植)총장이 떨쳐나선「바른교육 큰사람 만들기」국민운동은 통일을 향한 길목에서 우리의 울 안부터 바로잡자는 인간성 회복의 자각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저희가 먼저 매를 맞겠습니다.그리고 매를 들겠습니다.』 이시대의 피히테같은 굵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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