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PC보급 5백만.통신인구 50만 급속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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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국내 개인용컴퓨토 보급대수가 5백만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중PC통신에 필요한 모뎀을 장착한 PC는 약 20%정도다. PC통신의 선진국인 미국도 30%를 넘지 못하는 형편이고 보면 우리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선 셈이다. 천리안.하이텔을 비롯,국내PC통신 인구가 50만명을 헤아리고 있다. 어떠한 결과에도 원인은 있게 마련,누가 이 튼튼한 터전을 닦아놓은 것일까.
88년5월 어느날 홍익대 부근에 위치한「전자카페」에 서로 얼굴 한번 본적이 없는 1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처음으로 눈인사를 나눴다.이들은 87년 데이콤이 상용화한「H-Mail」이라는 전자우편시스템을 이용하던 사람들로 PC통신이 가능한 카페가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에 몰려들었던 것.당시 H-Mail 가입자는 1백명이 채 돼지 않아 전국에서 컴퓨터를 다룰줄 안다는 젊은이들은 다 여기에 모였던 셈이다.
H-Mail을 이용,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던 이들은 본격적 전자게시판을 만들자는데 의기투합,「전자우편으로 사귄 친구들」을 의미하는「엠팔(EMPAL:Electric Mail PAL)」을 결성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나이였던 이들은 대부분 대학생이거나 개인적으로 컴퓨터를 이용하는 보통 젊은이들이었고 의사.
한의사 한명씩이 눈에 띨 뿐이었다.
이들은 어렵사리 1인당 50만원을 내 컴퓨터와 모뎀.통신프로그램을 들여놓고 89년5월 8회선의 유닉스(UNIX)용 전자게시판시스템「엠팔게시판」을 만들었다.대형 온라인시스템인 케텔(하이텔의 전신).천리안.포스서브등이 탄생되기 전의 일이다.
엠팔 회원들은 돼지머리를 사다가 나이가 많아 회장으로 뽑힌 박순백(朴淳伯.당시 36세)씨 집 지하실에서『제발 컴퓨터가 고장나지 않게 해달라』는 고사까지 지냈다.2년반동안 이 지하실에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전국의「컴퓨터 하숙생」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렸다.
5년이 지난 지금 PC통신 선구자들이었던 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컴퓨터를 사랑하는 것엔 변함 없지만 이들은 이제 서로가 신문이나 잡지에서 만나는 유명인사들이 돼 있다.엠팔 초대회장을 지낸 박순백씨는 국내 최초의 기명 컴퓨터 칼럼니스트로 활약하다 한글과 컴퓨터社 이사가 됐고,2대회장이던 이기성( 李起盛.49)씨는 국내 컴퓨터관련서중 최다 판매기록을 가진 『컴퓨터는 깡통이다』를 쓰고 신구전문대 전자출판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공학도 이찬진(李燦振.29)씨는 국내 워드프로세서 소프트웨어시장을 석권한「글」을 개발,한글과 컴퓨터社를 차렸고,「엠팔의 반역」이라는 최초의 공개 통신프로그램을 만든 묵현상(墨炫相.35)씨는 「삼보컴퓨터 기획부장」이라고 적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컴퓨터그래픽회사를 차려놓고 전자카페를 운영하던 안상수(安尙秀.41)씨는 컴퓨터서체를 전공하는 교수(홍익대)로,잡지사 편집장이던 탁연상(卓演相.35)씨는 국내 제일의 컴퓨터 칼럼니스트로 변신했다.
〈金政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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