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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철의 BT 이야기] 뇌에서 미래 찾는 美 신경과학회 보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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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27면

지난 3~7일 미국 서부의 휴양도시 샌디에이고는 신경과학자들의 최대 모임이라 할 수 있는 제37차 뉴로사이언스학회(사진)로 북새통을 이뤘다. 3만 명의 인파가 운집하다 보니 시내 호텔은 몇 달 전 예약이 마감됐고, 학회 기간 중 주변 식당에는 수십m의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뉴로사이언스학회는 일차적으로는 과학자를 위한 모임이지만 관련 기업들의 거대한 마케팅 현장이기도 하다. 학회 기간 중에 함께 개최되는 박람회에는 2000개 이상의 기업이 참가하는데, 이는 미국에서 개최되는 바이오 분야의 박람회 중 최대 규모다. 해마다 열리는 이 거대한 행사를 기획하고 주최하는 기관은 신경과학회라는 민간 학술단체로, 전 세계 신경과학의 흐름을 주도하는 과학자 모임이다.

1969년 창립된 신경과학회는 회원이 3만8000명으로, 바이오 분야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출범 당시에는 미국의 신경과학자 위주로 구성됐으나 이제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참여하는 학회로 성장했다. 신경과학회는 바이오 분야의 다른 학회들보다 월등한 규모를 자랑한다. 예를 들어 다음달 연차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미국 세포생물학회는 신경과학회보다 10년이나 앞서 창립됐으나 회원 수는 신경과학회의 4분의 1에 불과하다. 이는 신경과학이 세포생물학보다 4배 더 중요하다거나 연구해야 할 학문적 가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다른 분야보다 월등히 많은 자본이 투자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신경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오래된 것이지만, 획기적인 전기는 90년 미국 정부가 다가올 10년을 '뇌의 10년(Decade of Brain)'으로 선포하면서부터다. 뇌 연구는 뇌에 대한 분자적 수준의 해부학, 유전체 연구와 같은 학술적 연구 외에도 뇌영상 정보의 수집과 해석, 뇌질환 치료제의 개발, 소실된 뇌기능을 복구할 수 있는 각종 이식 장치의 개발과 같은 응용연구에 이르기까지 매우 방대한 분야다. 미국 정부는 이와 같은 연구 분야를 아우르기 위해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에 전문 연구센터를 설립함과 동시에 미국 전역에 25개의 뇌 연구센터를 설립했다. 해마다 미국 정부가 뇌 연구에 투자하는 금액은 130억 달러에 달하는데, 민간 제약회사가 지출하는 뇌질환 치료제 연구 투자와 합치면 미국에서 신경과학에 투자되는 금액은 연간 250억 달러(약 22조원)에 이른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미국 과학자들이 신경과학에 몰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 됐고, 그 결과 미국 신경과학회가 현재의 규모로 성장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국내의 신경과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다. 10년 전인 98년 뇌연구촉진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신경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정부 차원의 투자는 미국의 200분의 1에 불과하다. 관련 과학자 수도 100명을 넘지 않는다. 국내의 뇌과학 관련 학회는 해마다 심각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기업체들도 행사 참가를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회 활동에 연간 200억여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는 미국 신경과학회와 비교되는 부분이다.

첫날 열린 특별강연에서 눈에 띄는 연사가 있었다. 개인 휴대용 정보단말기(PDA)의 원조인 팜파일럿을 개발한 제프 호킨스다. 그는 어떻게 신경과학이 컴퓨터 개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설명했으며, 특히 미래의 컴퓨터가 신경과학과 어떻게 접목될 것인가에 대해 강연했다.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에서 신경과학을 미래 과학 분야로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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