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의 몰락 ‘네이버’ 탓이 아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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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호 04면

1999년 6월 첫선을 보인 인터넷 검색포털 ‘네이버(NAVER)’가 지금의 네이버일 수 있었던 건 결정적인 전략 덕분이었다. 2003년 무렵 네이버는 오프라인 콘텐트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돈을 주고 사들였다. 인쇄 매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터넷에 콘텐트를 넘겼다. 네이버는 이 콘텐트로 거대 미디어로 도약했다. 인쇄 매체들은 뒤늦게 네이버를 견제하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독자들은 진작 신문과 잡지의 내용을 네이버에서 확인하는 데 길들여졌다. 돈도 아쉬웠다. 네이버를 끊는 건 불가능했다.

너만의 취향을 되찾아라

재주는 잡지가 넘고 돈벌이는 포털이
인터넷이 한국의 잡지를 죽였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면서도 틀린 말이다. 잡지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시장에서 갈 길을 가거나, 온라인을 통해서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거나였다.

정치와 경제, 대중문화 잡지는 온라인에 공을 들였다. 패션지와 주부 대상 잡지들은 인쇄 매체의 특징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더 화려한 사진과 값비싼 물건을 잡지에 실었다. 몇 년 뒤에 명암이 갈렸다. 정치와 경제, 대중문화 잡지는 허덕이고 있다. 온라인에선 돈 만들 구멍을 찾지 못했다. 독자의 이목은 포털한테 강탈당했다.

포털의 콘텐트는 잡지 것이었다. 재주는 잡지들이 넘고 돈은 포털이 번 꼴이었다. 패션지의 광고 매출은 매달 수십억원에 달한다. 입고 먹고 마시는 라이프스타일 취향에 주력하면서 새롭게 공략할 만한 틈새시장도 늘어나고 있다. 액세서리부터 여행 가이드, 인테리어까지 잡다하다. 그게 다 광고다. 돈이다. 패션지들은 제법 넉넉하다.

1990년대는 시사잡지와 영화잡지의 전성기였다. 매체당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광고 매출도 쏠쏠했다. 지금은 다들 생존 투쟁 중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잡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잡지는 단지 미디어다. 다수 대중을 상대하는 매스미디어가 아니다. 독자의 소소한 취향과 구미에 맞춰주는 맞춤형 읽을거리다. 반면에 시사잡지와 영화잡지 같은 대중지들은 매스미디어를 지향한다.

영화는 수십만 명이 봐도 망했다고 한다. 수백만 명은 들어야 대박이다. 이건 음악이나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소재 자체가 매스미디어다. 당연히 다루는 내용 자체가 거대 담론이다. 이런 소재는 잡지보다는 방송이나 인터넷에 더 맞다. 영화잡지를 보는 독자보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훨씬 많다. 괴리다. 사정이 이런 데도 대중문화 잡지들은 매스미디어의 공식에 따라 잡지를 만들었다.

영향력을 넓히고 이름을 알리고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매스미디어의 성공전략은 사실 잡지와는 맞지 않는다. 영화잡지가 매주 발행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다. 잡지가 자주 나온다는 건 그만큼 많이 찍고 많이 뿌린다는 얘기다. 그러자면 돈이 든다. 하지만 잡지 100권을 시장에 뿌려도 사는 사람은 20~30명 남짓이다. 나머지 잡지들은 폐기된다. 적자 규모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데도 이 전략을 십 년째 고수하고 있다.

잡지가 인터넷에 발을 디딘 것도 매스미디어 전략 때문이었다. 가능한 한 기사가 많이 노출되고 읽는 사람이 많다면 매체 파워도 커진다는 거였다. 인터넷과 잡지를 결합하겠다는 시도는 2000년도부터 있었다. 기자가 잡지에 기사도 쓰고 카메라 앞에서 온마이크 방송 진행도 했다. 그건 수익모델 없는 몸집 불리기에 지나지 않았다. 다 잡지를 잘못 이해한 결과다. 잡지는 매스미디어여선 안 됐다. 90년대 한국의 대중잡지 시장이 이상 고온이었을 뿐이다.

매스미디어를 지향하지 않았던 대중문화 잡지도 있긴 했다. 취향으로 대중문화를 향유하는 잡지들이었다. 만화잡지나 단편소설 잡지 같은 것들이 있었다. 건축이나 문예, 사진 잡지 같은 전문 잡지들도 있었다.

하지만 잡지를 만드는 데는 돈이 들었다. 이런 잡지들은 광고를 전혀 확보하지 못한 채 갈수록 폐쇄적인 ‘오타쿠 잡지’로 전락했다. 아니면 전문가들을 위해 전문가들이 만든 전문 잡지들이 돼버렸다. 그들은 정작 대중문화의 중심엔 별다른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다.

소비 이끄는 패션잡지의 전성기
지금은 패션잡지의 시대다. 대중문화 잡지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대중문화 잡지 스스로 잘못된 미디어 전략을 세운 탓이 크다. 네이버 탓을 할 게 아니란 말이다. 라이선스 패션지 시장은 팽창 중이다. ‘엘르’나 ‘보그’ 같은 여성 패션지에서 ‘GQ’ ‘아레나’ 같은 젊은 남성 패션 시장으로 넘쳐났고 이젠 ‘루엘’ 같은 중장년 남성지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이런 흐름 뒤엔 10년 전 외환위기 이후 만연한 소비자본주의가 있다. 소비는 취향이다. 잡지는 취향을 담는 그릇이다. 패션잡지는 소비를 이끄는 쇼윈도 역할을 했다. 방송에선 휴대전화 광고가 나온다. 휴대전화는 다수 대중을 상대로 한 상품이다. 패션지엔 명품 광고가 실린다. 상위 3%를 위한 광고지만 이 광고에 눈길을 빼앗기는 건 100%다. 패션지엔 늘 값비싼 제품에 대한 값비싼 광고가 넘쳐난다.

대중문화는 싸구려 문화다. 사실 영화나 음악, 방송은 서민의 오락거리일 뿐이다. 싸구려 문화에 값비싼 광고가 붙을 턱이 없다. 이런 소비자본주의 시대에 살아남자면 엔터테인먼트는 더욱 싸구려 오락거리가 돼야 한다.

100만원짜리 옷을 입고 7000원짜리 영화를 보러 가는 게 현실이다. 대중문화 담론을 담는 잡지가 발 디딜 틈이란 없다.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꽤 진지했던 관심도 과열 현상이었다. 문화 소비는 명품 소비로 이행하는 전 단계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패션지에도 한계가 있다. 광고 매출은 크지만 열독률은 높지 않다. 제작비와 배송비를 감안하면 찍을수록 손해란 얘기도 있다. 잡지가 취향과 문화를 담기 전에 광고 전단처럼 변질됐다는 비판도 있다. 그나마도 시장이 포화됐다.

새로운 패션잡지가 거듭 창간됐거나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제 살 깎아먹기 직전이다. 잡지 업계는 블루오션으로 눈을 돌리는 분위기다. IPTV다. 느리고 둔중한 잡지 미디어는 늘 전광석화 같은 뉴미디어 경쟁에서 뒤처졌지만 인터넷TV 시장에선 다를 수도 있다. 채널이 늘어난다는 건 콘텐트가 부족해진다는 뜻이다.

잡지 업계엔 미디어 콘텐트가 많다. 이건 영화잡지를 비롯한 대중문화 잡지에도 청신호다. 매스미디어가 되고픈 대중문화 잡지한테 방송은 날개다. 2008년이면 IPTV 경쟁이 본격화된다. 대중문화 잡지의 성패에도 분수령이다.

흔히 일본을 잡지 천국이라고 한다. 다양한 형태와 취향의 잡지가 공생한다. 한국 잡지 시장에서 그런 환경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양한 잡지는 다양한 생각을 지닌 대중이 많아져야만 가능한데 한국 사회는 매스미디어에 대중이 길들여지는 구조다. 한 가지 이슈에 다수 대중이 몰입하도록 한다. 이래선 자기 취향을 고집할 수 없다. 그런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도 태어나지 못한다.

대신 한국 잡지의 흥망성쇠는 이전 유행을 몰아내며 거듭된다. 독자가 한 가지 유행에 쉽게 매몰되기 때문이다. 문예지를 시사지가, 시사지를 영화지가, 영화지를 패션지가 대체했듯이 말이다. 네이버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스스로 그릇이 됐기 때문이었다. 온갖 질문과 지식을 흡수했고 갖가지 취향의 잡지까지 머금었다.
결국 다양한 취향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취향은 원래 잡지의 것이었다. 이제 잡지가 취향을 되찾을 차례다.


신기주씨는 ‘필름 2.0’ ‘GQ’ 등 문화 및 패션지에서 다양한 대중문화 장르를 취재해 왔으며 현재 ‘프리미어’에서 영화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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