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Biz] ‘현대차’ 간판 달고 버젓이 영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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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촬영한 짝퉁 현대차 부품상가.

이코노미스트
지난 11월 1일 중국의 한국산 자동차·부품 시장 현황을 살펴보기 위해 베이징을 찾아갔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중국 자동차 시장을 대표하는 베이징은 세계 각국의 자동차 메이커가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워낙 기하급수적으로 커가는 중국 시장을 놓고 전 세계 자동차회사들은 판매비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하다 못해 처절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베이징에 진출한 지 5년째다. 그 사이 누적 판매량 100만 대를 넘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2005년 판매량 4위를 정점으로 점차 하락해 최근에는 8위로 떨어지는 쓴맛을 보고 있는 실정이라 분발이 요구된다.

특히 중국에서 한국산 자동차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한국산 자동차 디자인, 핵심 부품 등은 상당 부분 짝퉁이나 저가 저질 부품이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 자동차 현황을 직접 눈으로 파악하고자 베이징에 이른 아침에 도착해 보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준비가 한창인 듯 주변 곳곳이 공사 현장이었다. 2~3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차량이 많아졌고, 차종 또한 다양했다.

베이징 시내까지 쭉 뻗은 왕복 10차로 정도 도로를 달리면서 눈을 의심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넓은 고속도로를 가르는 중앙분리대와 녹지대 건너로 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하는 차량 한 대가 필자와 같은 방향으로 고속으로 달리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한창 대낮에 고속으로 상당한 거리를 달리는 것을 보면서 일방통행인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함께 탄 사람에게 물어본즉 역주행은 간혹 볼 수 있는 광경이라는 것이었다. 몇 년 전 베이징 방문시에도 중국의 교통상황이나 교통문화가 최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나 아직도 이해 못할 장면을 목격하면서 현재 중국의 혼란한 자동차 시장이 겹쳐져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현대차 제2공장은 내년 가동

필자가 처음 방문한 곳은 현대모비스 사업장과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이었다. 현대모비스 물류창고 정문에 들어서면서 넓은 대지와 입지는 부러울 정도로 좋아 보였다.

가까운 곳에 국제공항과 베이징 시내가 있고 거미줄 같은 연계 도로망이 갖춰진 최고의 입지로 대규모 물류창고의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입구에 있는 거대한 굴뚝은 이전 공장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수십 미터 높이며, 원 상태를 유지하면서 리모델링해 홍보용으로 사용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주변에 국제공항이 있기 때문에 높은 구조물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전 구조물을 대안으로 이용한 것은 매우 훌륭한 아이디어였다. 이웃에는 현대모비스 모듈 공장, 변속기 공장이 있고 그 이웃에는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이 함께 있어 시너지를 높이는 데 최적이었다.

물류창고 내부는 새롭게 단장됐다. 동선을 고려해 설계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수만 개의 부품이 체계적으로 분류·관리되는 모습에서 우리 기업의 위상을 알 수 있었다. 창고 사이 사이에서 일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의욕으로 넘쳐 있어 쫓아오는 중국 자동차산업의 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

다만 그 거대한 물류창고에 부품을 분류하는 소프트웨어적 시스템은 국내의 체계적인 모습과 달리 수작업 형태였다. 중국 인프라 구축의 한계를 보는 듯했다. 한편으로 위안이 되기도 했다.

단지 안에 꾸며 놓은 인공잔디로 된 미니 축구장과 편의시설 등을 보면서 이웃한 현대모비스 모듈공장으로 이동했다. 한마디로 대단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현대모비스는 산업적 기반보다 유통회사라며 비아냥거리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 현지의 모습은 그것이 아니었다.

공장 내부는 구역별로 체계적으로 나뉘어 있었고 원자재부터 시작해 하나하나 조립되면서 최종적으로 모듈로 제작돼 출고되고 있었다. 현대모비스는 이러한 공장 및 물류창고가 중국에만 10여 개 있을 정도로 규모를 갖추고 있었다.

자동차는 몇 개의 주요 모듈로 구성돼 있다. 각 모듈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생산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하느냐에 따라 원가절감이 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동차 모듈산업은 자동차산업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 산업이다.

모듈공장 한쪽에는 각 세부 제품에 대한 연구시설이 함께 있었다. 각 제품에 대한 정밀한 측정과 연구를 통해 품질개선과 불량 없는 제품 생산을 약속하는 시설이었다. 그 옆에 불량 제품 설명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원가절감 아이디어 등의 사례가 적혀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 현대차는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표 기업으로 중국 자동차 시장에 바람을 일으킨 기업이다. 중국 진출 3년 만에 판매대수 20만 대를 돌파해 시장 점유율 7.5%, 판매량 4위까지 올랐다.

중국 시장은 독일 폴크스바겐 등이 20여 년 동안 장기적으로 투자하면서도 공략하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최근 몇 개월 동안 주춤하는 사이 올해 전반기 판매 대수 8위로 밀려났지만 심기일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베이징 시내에서 현대차의 위상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택시다.

현재 베이징 택시는 연차적으로 모두 현대 ‘아반떼’ 모델로 바뀌고 있다. 현지에선 ‘엘란트라’란 이름으로 일부 변경한 모델이다. 택시는 도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모델인 만큼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쏘나타’도 가끔 눈에 띈다.

초현대식 공장…연 29만 대 생산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 전경.

베이징 현대차 공장은 대단했다. 큰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고 생산라인은 초현대식이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연 29만여 대가 생산될 정도로 대규모 시설이다. 제2공장은 대지 규모만 50만 평에 달하는 초현대식 공장이다. 화단 등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베이징 각 기업의 벤치마킹 모델로 많은 사람이 견학을 온다고 한다.

당일에도 주변에는 단체로 온 외국인과 현지인으로 북적거렸다. 특히 제2공장은 차량이 제조되면서 컨베이어 벨트로 이동할 때 외부에서 볼 수 있게 일부 외벽이 투명하게 돼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내년 초부터 최근의 판매 부재를 만회할 ‘아반떼HD’등 신차 30만 대 정도가 생산될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자동차산업을 ‘중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기술’로 규정하고 후진적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한국 자동차 기업은 짧은 역사와 급격한 성공 모델로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중국은 현재 현대차 기술 습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조건으로 내민 것이 50 대 50의 합작 생산이다. 이번 제2공장도 연구개발시설 협상이 길어져 준공이 늦어지게 됐고, 이로 인해 신차종 투입이 안 돼 판매부진로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서울보다 한 시간 늦은 베이징의 하루가 빨리도 넘어가는 모습을 함께하면서 저녁 장소로 이동했다. 바쁜 한나절이었지만 여러 공장과 주변 시설, 그리고 급변하는 거리 모습을 보면서 불과 서울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남짓한 가까운 곳에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큰 경쟁상대가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

저녁 시간에 함께한 현지 임원과 한국 특파원들에게서 중국의 광속 변화 얘기를 들었다. 저녁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중국산 ‘배갈’만큼이나 독한 그들의 산업화 열기를 체감했다.

둘째 날, 뻐근한 몸을 이끌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호텔에서 약 40분 거리에 있는 현대모비스 변속기 공장으로 향했다. 6만 평의 대지에 1만3000평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600명에 이르는 종업원이 연 40만 대의 신소형 변속기와 수동 변속기를 생산하고 있다.

깔끔하면서도 체계화된 공장시설도 좋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시설은 철저한 완성도 검사였다. 최종 변속기를 자동화된 시설에 탑재해 기능과 불량 유무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가지 특징은 공장 투어 전에 있었던 브리핑 중에 주고받은 질의응답 시간에 자동변속기는 전량 한국에서 완성품으로 수입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중국 시장에서 승용차에 탑재하는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 비율은 70 대 30 정도. 즉 자동변속기도 상당량 필요함에도 전량 수입하는 것은 역시 기술 유출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서 주장하는 현지 공장을 짓게 되면 어떻게든 기술 유출은 발생하는 만큼 국내에서 수입함으로써 최대한 기술유출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다.

자동차의 핵심 기술은 꼭 이것이다고 할 수 없으나 주로 엔진, 변속기 및 안전 구조 설계를 생각한다. 현재 국내의 기술 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 엔진 기술은 약 90~95%, 변속기는 80% 정도이며, 하이브리드 등 차세대 기술수준은 60% 정도에 불과하다.

10% 정도의 격차는 1년 정도로 보면 된다. 세계 최고의 자동변속기는 8단이 이미 상용화됐고 10단으로 가고 있는 실정이나 국내 기술은 내년에야 6단이 실용화된다.

그러나 중국에 비해서는 월등히 앞서는 상태여서 상당한 격차를 나타내고 있으며, 아직도 상당부분 수동변속기가 주류를 이루는 만큼 굳이 중국 현지에서 자동변속기를 생산할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 현대차 공장 방문을 끝내면서 30분 거리에 있는 오방교 부품상가를 방문하기로 했다. 특히 국내의 각종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바와 같이 중국산 짝퉁이나 저질 부품은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더욱이 중국에서 현대차나 기아차의 위상이 오르면서 모조부품이 극성을 부리고 있는 실정이어서 부품시장 방문은 기대와 함께 우려가 교차했다. 현재 베이징에서 거래되는 현대 및 기아차 부품 중 20~30%가 모조품으로 간주되고 있다.

모조품을 정품으로 알고 차량에 사용할 경우 수명 단축은 물론 기업 이미지에도 큰 영향을 주는 만큼 현대모비스는 중국 정부와 합동단속을 하고 있으나 그 규모는 빙산의 일각으로 판단된다.

단속된 현대모비스의 모조부품은 2005년 32억원, 2006년 82억원, 2007년 현재까지 153억원, 160건에 이를 정도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모조품은 주로 중국 장쑤성, 저장성 및 푸젠성에서 제조돼 유통되고 있고, 해외로 수출까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수출 지역도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동, 유럽, 미주 등 지역을 가리지 않아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부품상가는 평일이어서 그런지 그리 많은 사람이 있지는 않았다. 며칠 전 국내 방송사에서 중국산 짝퉁 부품에 대한 뉴스가 크게 보도되면서 현지에서도 많이 알려져 그런지 분위기는 좋아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움직이는 마이크로버스 안에서 주변 분위기를 보면서 상가 하나하나에 쌓여 있는 부품을 살펴보았다.

8층 건물 전체가 짝퉁시장

▶‘짝퉁 마티즈’(위)와 ‘짝퉁 싼타페’.

특히 눈에 많이 띄는 것은 현대차 로고가 붙어 있는 상가가 많다는 점이다. 국산차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동행한 현지인의 설명으로는 정식 부품상이 아니며, 위조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현대·기아차 로고뿐만 아니라 현대모비스 로고도 함께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현대모비스 로고는 국내만 사용할 뿐 외국에서는 현대나 기아자동차 부품으로만 사용하므로 중국에서의 현대모비스 로고는 모두 불법인 것이다.

일행 중 한 명이 내려 사진을 찍자 어디선가 바로 청년 한 명이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더 확인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심각한 현황을 단면적이나마 확인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중국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전 품목에 걸쳐 세계 최대의 모조품 생산기지다. 최근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대부분의 모조품이 중국산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아 있는 시간을 활용해 ‘수수가’라는 최대의 짝퉁시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7~8층 정도의 건물 전체가 전 세계 모든 명품의 짝퉁들로 가득한 곳이다. 가방은 물론이고 시계, 보석 등 모든 물품이 분류되어 있었고 고객의 70% 이상이 외국인으로 보였다.

잠깐 시계 가게에 들러 보니 점원이 전 세계 명품 사진과 모델명이 담긴 책자를 꺼내면서 원하는 기종을 짚어 보라는 것이었다. 몇 가지를 지적하자 바로 똑같은 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신모델부터 예전 것까지 없는 게 없는 세계였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경험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중국의 자동차 기술 수준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고 우리의 입지는 더욱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현재 우리 모습은 너무 느슨하고 나태한 것은 아닌지, 노사분규 등 너무 배부른 소리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더욱 우리를 죄어 오는 일본 등 선진국과 바로 뒤에 다가와 있는 중국의 위협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귀국길에 올랐다.

김필수 대림대학 자동차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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