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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사르코지의 대미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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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미국을 방문해 프랑스-미국 양국 간 우의를 회복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양국 관계는 샤를 드골 대통령 재임(1959~69년) 이후 언제나 미묘한 문제였다. 드골 대통령 집권 이후 프랑스의 외교정책은 미국으로부터 독립된 기반 위에서 수립됐다. 이는 프랑스가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미국의 동맹국들과는 달리 프랑스는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그 결과 프랑스는 미국과 생각이 달라 갈등을 빚을 때에도 자율적인 결정이 가능했다. 그래서 프랑스에는 종종 ‘대서양 학급의 불량 학생’이란 딱지가 붙어다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국제적 위기상황에서 프랑스는 미국 편을 들었다. 프랑스가 갖고 있었던 전략적 자율성이 프랑스로 하여금 졸개처럼 보이지 않게 하면서도 가능한 한 미국에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해주었다.

베를린 장벽 위기(61년)와 쿠바 미사일 위기(62년), 그리고 유럽 미사일 위기(80년대)로 동서 진영 간 충돌 위험이 커졌을 때마다 프랑스는 충실하게 미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그러나 평상시 프랑스는 국제무대에서 미국의 행위에 대한 기탄 없는 비판자였다.

이라크 전쟁이 터졌을 때 프랑스는 주요한 전략 사안으로는 처음으로 미국에 반대 입장을 취했다. 미국인들은 배반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은 미국이 공격받고 있는데 프랑스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이라크 전쟁이 단순한 실수를 넘어 중동이라고 하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오늘날 미국에서조차 대부분의 사람이 이라크 전쟁은 실패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래도 미국인들은 이라크 전쟁을 비판했던 자크 시라크를 여전히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사르코지는 “이라크 전쟁에 관한 한 시라크가 옳았다”고 선언했음에도 미국에서 인기가 좋다.

미 의회 연설에서 사르코지는 미국인들을 칭찬했다. 그는 제1, 2차 세계대전과 냉전시대 미국의 개입에 대해 존경의 뜻을 표시했다. 그는 이런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자유만이 아닌, 다른 나라의 자유를 위해서도 행동했다는 사실을 찬양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처럼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

사르코지는 세계가 지구 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고도 말했다. 그것은 미국의 교토 의정서 서명 거부를 우회적으로 지적하는 말이었다.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당선한 직후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프랑스 군대의 철군 여부를 놓고 궁금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그는 “필요하다면 계속 아프간에 군을 주둔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아마 프랑스군이 철수하면 미국이 이를 배반으로 여길 것이고, 다른 파병국들의 연쇄 철수를 부를 수도 있음을 고려했을 것이다. 아프간 상황이 개선될 조짐이 없지만, 군대를 계속 주둔시키면서 두 개의 재앙 가운데 덜 위험한 것을 선택한 것이다.

나토에 관해선 미국에 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유럽에 주도권을 넘겨준다면 프랑스가 나토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프랑스가 나토에 완전히 가입한다면 이는 프랑스 정책에 큰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나토의 유럽화는 미국의 정책에도 엄청난 변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다. 이란에 관해선 북한 사례를 칭찬하면서 군사적 해결이 유일한 최선의 선택이 아님을 강조했다.

결국 사르코지는 균형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말하자면 동맹국이지만 종속되는 것은 거부하고, 파트너지만 자율성을 간직한, 그리고 자신의 두 발로 서 있는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연구소장

정리=박경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