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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준화 수능 등급제' 고통스러운 후유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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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 학원 수강료는 '수시 논술 6회 강의에 99만원' '정시 논술 12회 강의에 199만5000원'이다. 수강료가 비쌌지만 학생들로 넘쳐났다. 이 학원 관계자는 "수시 논술 강좌에만 500명이 몰려왔다"고 말했다. 수강 등록을 위해 찾아온 한 학부모는 "수능.내신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게 없어 돈을 쓸 수밖에 없다"고 답답해했다.

점수를 없애고 등급을 도입해 입시 경쟁을 줄인다며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평준화 수능 등급제'가 학생.학부모를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수험생들은 성적 발표일(12월 12일)까지는 사설 학원의 추정 등급에 의존해 대입 전략을 짤 수밖에 없다. 특히 수시 2학기 전형과 정시모집 중 어느 것을 택할지 고민하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미로 찾기 게임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주요 사립대들이 내신 비중을 약화시키자 논술에 올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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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을 믿어야 할지…"=서울 K고 윤모(18)군이 받은 수능 가채점 결과는 언어, 외국어, 과학탐구 물리Ⅰ, 화학Ⅰ은 모두 1등급이었다. 윤군은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논술학원을 찾았다. 수리 가형에서 원점수(100점 만점) 97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설 학원들은 이 점수에 대해 '1등급' '2등급'이란 엇갈린 예측을 내놨다.

지방 학생의 고통은 더욱 크다. 20일 대치동 C학원 앞에서 만난 부산 J고 3학년 우모(18)군은 수능시험 이튿날 서울에 올라왔다고 했다. 함께 온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신촌의 33㎡(10평)짜리 원룸에서 지내며 매일 학원에 다니고 있다. 24일 고려대 수시 논술 시험을 치를 우군은 "학원비가 비싸도 기대할 것은 논술뿐인데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했다.

게다가 이날 한 사설학원이 "수능 수리 가형에서 100점을 받아야 1등급이 될 수 있다"는 예측을 내놓으면서 수험생들의 혼란을 증폭시켰다. 이 학원은 수능 당일(15일) 저녁 수리 가형 1등급의 점수를 97점으로 발표했다가 번복한 것이다.

◆사설 학원만 대박=서울 강남구 대치동 Y논술학원은 밀려드는 수강생들 때문에 3층 규모 학원 공간이 부족해 근처 빌딩을 임대했다. 이 학원 관계자는 "새 강의실을 못 찾는 학생들을 위해 버스로 학생들을 직접 이동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원으로 김모(44.서울 서초구 서초동)씨가 헐레벌떡 달려갔다. 그는 "광주에 사는 고3 조카가 지금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중"이라며 "그 사이에 논술반이 마감될까 봐 고모인 내가 직접 뛰어왔다"고 말했다.

박수련 기자

◆'평준화 수능 등급제'=수능 성적을 점수 표시 없이 9등급으로 나누는 제도다. 2004년 대통령 자문 교육혁신위원회(위원장 전성은)가 제안해 올해 처음 시행됐다. 혁신위 제안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은 성적을 7등급으로 나눠 수능 비중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안병영 당시 교육부총리가 "변별력 없다"고 반대해 성적을 9등급으로 나누게 됐다. "수능 점수로 학생 실력을 평가하는 대신 학교생활기록부(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라"는 본뜻을 강조하기 위해 중앙일보가 '평준화'라는 말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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