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류 수출 중단 중국 "내수가 급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1면

중국 정부가 ‘석유 수출 중단, 수입 확대’란 고강도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국제 유가가 배럴 당 100달러에 육박하면서 중국 내 ‘석유 대란’을 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당장 국제 원유시장엔 ‘중국 악재’ 경보가 떴다. 가뜩이나 국제 원유를 싹쓸이하다시피 해 ‘원유 블랙홀’로 불려온 중국의 이번 조치가 원유시장의 수급 균형을 크게 깨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일 중국의 양대 석유회사인 중국석유(Petro-China)와 중국석화(Sinopec)는 “전국의 정유 공장과 주유소에 전방위로 공급을 확대하겠다”며 “수입을 대폭 확대하고 석유류 수출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는 두 국유 기업의 대주주이자 거시경제를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이달 초 국개위는 석유류 가격을 9~10% 올렸다. 그러나 중국 내 기름 사재기가 계속되는 등 유가 급등에 따른 불안이 이어지자 이런 고강도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중국석화 왕톈푸 총재는 “석유류 판매 제한을 풀고 지방 정부와 협력해 고속도로와 국도에 석유 공급이 끊기지 않도록 하겠다”며 “주유소 앞에서 기름을 넣기 위해 장사진을 치는 상황이 곧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5만t의 재고를 방출한 중국석화는 이달 들어 5만t을 추가로 풀었다. 12월에는 계획보다 20만t을 추가 정제하도록 지시했다.

석유 수입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중국석유는 올 들어 9월 말까지 31만t의 석유를 추가 수입한 데 이어 지난달 말에도 10만t의 디젤유를 추가로 들여왔다. 중국석유는 정부 소유 무역업체들에 “무역 채널을 총동원해 더 많은 해외의 석유 자원을 사들여라”고 독촉했다. 동시에 중국 밖으로 석유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하는 수출 중단 조치도 취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통계에 따르면 중국은 하루 44만 배럴(2005년 기준)을 수출한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고강도 조치는 그만큼 국내 석유 공급 사정이 심각하다는 의미다. 이미 충칭·청두·광저우·정저우 등지에선 주유소들이 아예 판매를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민영 주유소는 개점 휴업 상태다. 늘어나는 소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데다 중국 정부가 물가 안정을 이유로 기름값을 올리지 못하도록 과도하게 통제한 게 원인이다.

이번 조치로 긴급 대책을 발표할 정도로 “중국에 석유가 부족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제 석유시장이 요동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세계의 공장’ 중국에서 석유 부족 사태가 장기화하면 공장 가동 중단 등에 따라 공산품 원가도 덩달아 올라 중국발 세계 인플레이션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