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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졸레 누보의 계절이 돌아왔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6호 29면

우보졸레 지방의 생 아무르(Saint-amour:성스러운 사랑이라는 의미) 밭에서 생산된 보졸레 크뤼 와인.

11월 셋째 주 목요일은 보졸레 누보의 해금일이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다고 들었는데, 일본은 어쩐 일인지 해마다 이맘때면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들썩인다. 거품 경제 시절에는 나리타공항까지 마중을 나가 ‘첫 번째 누보’를 마신 사람도 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우리 남매는 보졸레의 ‘기사 칭호’를 받았다. 기사 칭호란 1947년에 탄생한 보졸레 기사단이 보졸레 지방의 와인에 공헌한 사람에게 부여하는 칭호다. 지난해 ‘신(神)의 누보’라는 문구로 우리 남매가 기획하고 만화가 오키모토가 디자인한 비쇼 사(社)의 보졸레 누보가 폭발적으로 판매된 것에 대한 평가로 여겨진다. 그 기념으로 이번에는 보졸레를 이야기할까 한다.

보졸레 와인은 가격은 싸지만, 의외로 깊이가 있다. 흔히 보졸레 지방에서 생산되는 와인을 통틀어 보졸레라고 하는데 사실은 세 종류가 있다. 하나는 가격이 가장 싼 지방단위급 보졸레. 보졸레 지방 전역에서 수확한 포도를 사용하며 상쾌한 보졸레 와인 중에서도 가장 라이트해서 마시기 쉽다.

다음은 보졸레 빌라쥐, 즉 마을단위급 보졸레 와인으로 수확지구가 한정돼 있으며 포도 선과 작업도 엄격하다. 지방단위급 와인인 보졸레보다 중후하며 짜임새 있는 맛이 난다. 가격도 약간 높은 편. 이 지방단위급과 마을단위급 보졸레의 차이를 모르고 구입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맛은 상당히 다르므로 주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크뤼 뒤 보졸레’가 있다. 이것은 빌라쥐보다 고품질로, 보졸레 지구 중에서도 우량 지구로 분류되는 북부의 지정 마을에서 거둬들인 포도밖에 사용할 수 없다. 원료가 되는 포도는 지방단위급 와인과 마찬가지로 장기 숙성에는 썩 어울리지 않는다는 가메 품종이다. 프랑스인은 이것을 담가 바로 마시지 않고 봄까지 숙성시킨다. 그리고 부활절 축제 때 마신다.

사실 숙성돼야 맛있는 것은 크뤼 뒤 보졸레만이 아니다. 올해 5월 프랑스로 취재를 갔을 때 우리는 비쇼 사와 거래하는 보졸레 생산자를 방문했다. 보졸레 지방은 구릉지대기 때문에 언덕을 오르내리며 포도를 돌보느라 생산자들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들 모두는 성실하고 사람 좋은 와인 애호가로 결코 크지 않은 자택 겸 양조장에서 보졸레 와인의 백 빈티지를 시음하게 해 줬다.

보졸레의 이 오래된 술은 아름답게 숙성돼 있었고 무척 맛있었다. 5년쯤 지나면 가메 품종의 독특한 향기와 가벼움이 알맞게 어우러져 ‘역시 부르고뉴야’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맛으로 변한다. 참 신기하다.

누보가 주인공인 보졸레지만, 숙성시킨 보졸레도 재미있다. 올해 마시다남는 누보가 생긴다면 셀러에 잘 재워 두는 것은 어떨까. 몇 년 뒤 뜻하지 않은 맛있는 와인으로 탈바꿈할지도 모른다. 번역 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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