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에서>창작 뮤지컬 꿈꾸는 기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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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이 준공된지 꼭 90년.지금은 녹슨채 비무장지대 어느 구석이나 박물관 한귀퉁이에 지친 쇳몸을 누이고 있는 그시절의 철마는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을 지양하고 우리소리와 몸짓만을 고집해온 극단 모시는 사람들의 창작뮤지컬『꿈꾸는 기차』는 압록강 철교를넘어 하얼빈으로,시베리아로 횡단하며 끊어진 사랑과 오욕의 역사를 잇고 싶은 철마의 꿈을 그리고 있다.
일제의 러일전쟁 수행을 위해 만들어져 한일합방과 6.25를 지켜보고 이제는 허리잘린 철로위에 덩그러니 남은 기차 해방자호.그 해방자호를 타고 조선 삼천리와 만주벌판을 달리겠다던 청년기관사 현일은 늙고 병든채 갈곳없는 노인이 되어 옛일을 회상한다. 정신대,만주 유민으로 기억되는 일제수탈과 해방후 소련군의만행에서 6.25까지 해방자호가 겪어낸 수난의 민족사는 노인 현일에게 흘러간 과거일수만은 없다.정신대로 끌려갔다 소련군에게윤간당한 애인 분이가 90년대의 오늘 껌팔이 할머 니가 되어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는 현실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극은 수난의 역사를 돌이키며 통일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그린 통일뮤지컬이란 점에서 관객의 의식을 자극하는 구조를 가진다.그러나 그것은 고리타분한 설명이나 이념으로 관객을 강요하지않는다.오히려 힘찬 노래와 춤사위로 보는 이의 신명을 부추긴다.80년대 대학가에서 열병처럼 번지던 해방춤이 추어지고 민요풍의 전통가락이 심금을 울리는가 하면 록뮤직의 경쾌한 리듬이 흥을 돋운다.
음악과 연출을 직접 해내는 젊은 연출가 권호성은 호화스럽지는않지만 정감있는 뮤지컬 무대를 만들어내면서 우리 고유 음악극의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특히 무대중앙에 녹슨채 잠들어있던 기차가 객석을 향해 돌진하는 장면은 배우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신명을 자아낸다.
뮤지컬무대에만 신명을 바쳐온 극단 배우들의 앙상블도 푸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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