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공교육 되살린 블룸버그 시장 '책임 + 경쟁'의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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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뉴욕시 브루클린 빈민가에 위치한 엑셀런스 차터스쿨(정부 지원을 받으나 교장 책임 아래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학교)에 다니는 220명의 초등학생은 학생이 아닌 학자(scholar)로 불린다.

이들은 대부분 흑인이다. 절반 이상이 집안이 가난해 무료 급식 또는 급식 보조를 받는다. 그럼에도 학생들의 92%는 전국 영어 학력평가에서 '우수(proficient)' 이상의 평가를 받아 뉴욕주 평균(68%)을 크게 앞섰다.

이 학생들은 대학 진학을 꿈꾼다. 학부모들도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학교가 설립된 2004년 이전만 해도 거의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가난한 이 지역에선 마약 밀매가 성행했으며 생활고에 몰린 부모들은 자녀를 방치하다시피 했다.

이런 지역이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의 교육 개혁으로 대대적으로 변신했다. 블룸버그가 2001년 시장 선거전에 뛰어들었을 때 뉴욕시 공교육은 그의 말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뉴욕시 공립학교의 졸업률은 51%로 미국 평균(70%)을 크게 밑돌았다. 시민들은 "뉴욕시 공교육은 불치병에 걸렸다"며 체념했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블룸버그 시장이 '책임과 경쟁'을 기치로 중병에 걸린 뉴욕시 공교육을 수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 시장이 루돌프 줄리아니 전임 시장이 범죄를 몰아내기 위해 도입했던 '깨진 유리창(broken windows)' 이론을 공교육 개혁을 위한 '망가진 학교(broken schools)' 이론으로 확대했다"며 "뉴욕시의 공교육 개혁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본받을 만하다"고 칭찬했다.

그 내용은 이렇다. 블룸버그는 2002년 시장에 취임하자마자 교육감을 시장이 임명할 수 있게 규정을 바꿨다. 교사를 중심으로 한 교육계의 반발이 엄청났으나 절박한 교육 현실을 내세워 밀어붙였다. 과거 교육감은 교원노조가 중심이 된 지역 교육위원회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장 독점을 견제한 조엘 클라인을 교육감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지역 교육위원회가 좌지우지하던 공립학교 운영을 개별 학교 교장에게 넘겼다. 성적이 시원치 않은 대형 학교들은 폐쇄하고 여러 개의 작은 학교로 쪼갰다. 반면 학력평가가 좋게 나온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에게 두둑한 성과급을 지급했다. 또 공립학교의 본보기가 될 만한 60개의 차터스쿨을 만들었다. 블룸버그는 교육 개혁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빌 게이츠 MS 창업자나 월가의 투자은행가들에게 손을 벌렸다. 이 돈으로 교사의 연봉을 올려줘 개혁에 따른 교사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렸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학의 경우 합격점을 받은 뉴욕시 초.중학생들은 올해 65%에 이르렀다. 5년 전만 해도 40% 미만이었다. 공립학교 졸업률도 수십 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흑백 간 학력 격차는 줄고 있다. 블룸버그는 개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뉴욕시는 이르면 내년부터 성적이 나쁜 학교는 1차로 교장을 해임한 뒤 그래도 결과가 시원치 않으면 학교를 아예 폐쇄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반면 성적이 좋은 학교의 교장.교사에게는 최고 2만5000달러(약 2200만원)의 성과급을 지급한다.

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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