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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판 은밀한 물밑에서는 … '점의 정치' 한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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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점치는 정치판’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주말섹션 week& 지면.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정치권 한편에서는 점(占)을 내세운 '물밑 전쟁'이 한창이다. 일부 정치인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한 말을 은밀하게 퍼뜨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후보 측은 종교계를 의식해 이를 부인하지만 실제로 역술가들의 구전 홍보에 은근히 신경을 쓰는 눈치다.

요즘 여의도에서는 "돼지가 뱀을 잡아먹는다"는 일부 역술가의 말이 돌아다닌다. 돼지띠인 이회창 후보가 뱀띠인 이명박.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돼지띠와 뱀띠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 김대중 전 대통령(1923년생)이 "나는 돼지띠요, 박정희(1917년생) 대통령은 뱀띠다. 돼지가 뱀을 잡아먹지 않느냐"고 주장했지만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 과정에서 호적에 1925년생으로 되어 있던 김 전 대통령의 실제 나이가 알려졌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 측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이명박 후보는 금(金)이 네 개인 다이아몬드 사주"라며 '역술 마케팅'에 가세했다. 가장 단단한 광석답게 이 후보의 운이 가장 세다는 것이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자들은 이 후보의 사주에 금(金) 기운이 강하기 때문에 8월과 11월의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주장한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 측 박영선 의원은 "일부러 점을 본 적은 없지만 주위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덕담을 많이 들었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정 후보가 올 초 서초동에서 홍은동으로 집을 옮긴 것도 역술가의 조언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역술인이 "관악산의 화(火) 기운을 피하고 물 가까이 가야 대권을 잡는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정 후보 측은 이 소문을 확인해 주지 않았으나, 정 후보의 홍은동 집 근처에는 홍제천이 흐른다.

선문답 같은 예언에 대한 해석도 제각각이다. '차법사'로 알려진 차길진 한국불교신문 사장은 지난해 '홀연히 상서로운 빛이 무궁화(槿) 동산을 비추고 밝은(明) 달에 학(鶴)이 날아올라 부를 날을 맞이하네'라고 올 대선 결과를 짚었다. 이에 대해 이명박.박근혜.손학규 후보 측은 서로 자기 후보를 지목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실제로 각 후보 진영은 역술가들에게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역술가는 "선거철만 되면 여러 후보 측에서 도움 요청이 온다. 어떤 캠프에는 역술인의 입 단속을 전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대 철학과 송인창 교수는 "후보별로 3~4개의 사주가 시중에 돌아다닌다. 어느 것이 진짜인지, 혹은 후보 측에서 사주를 만들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대중에게는 영웅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역술가들의 운명론이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선거철이 되면 풍수나 사주의 결과도 정치의 은밀한 수단으로 쓰인다. 정치인들이 역술가들의 입에 신경 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주연.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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