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영화] 앤젤리나 졸리의 ‘애니메이션 육탄 유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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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로버트 저메키스

출연:레이 윈스톤, 앤서니 홉킨스, 존 말코비치, 앤젤리나 졸리 등

장르:판타지  등급:15세관람가

 

‘베오울프’는 ‘영화를 본다’ 보다 뭔가 신기한 것을 ‘구경한다’는 느낌이 먼저 시선을 끄는 영화다. 그 구경거리의 첫째는 실사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무는 최첨단 기술의 시연이다. 앤젤리나 졸리·존 말코비치·앤서니 홉킨스 등 익히 아는 배우들과 닮은 얼굴이 등장하는데, 어딘가 좀 다르다. 알고 보면 그 배우들 자체가 아니라 그들의 동작과 표정을 모션캡처로 옮겨 디지털 기술로 재현한, 일종의 디지털 배우다. 실사와는 질감이 다르면서도 땀구멍이나 솜털을 제대로 갖추고 나름대로 표정연기까지 해내려는 이들을 보고 있자면, 이걸 애니메이션이라고 불러야 할지 실사영화라고 해야 할지 꽤나 헷갈린다.(참고로 미국 아카데미는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으로 규정했다)

 물론 이런 시도가 처음은 아니다.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는 앞서 가족용 애니메이션 ‘폴라 익스프레스’(2004년)에서도 배우 톰 행크스의 모션캡처로 주요 캐릭터들을 만들어낸 바 있다. ‘베오울프’의 기술적 표현력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무엇보다도 눈높이가 옮겨졌다. ‘베오울프’는 화려한 액션을 가미해 성인 관객, 특히 남성 취향에 호소력을 발휘할 법한 영웅 판타지를 보여준다.

 최첨단 기술로 살을 붙인 이 영화의 뼈대는 역으로 아주 오래된 서사시에서 빌려왔다. 6세기 북유럽, 잔혹한 괴물 그렌델의 공격으로 시름에 빠진 왕 흐로스가(앤서니 홉킨스)의 왕국에 바다 건너 젊은 영웅 베오울프(레이 윈스톤)가 찾아온다. 타고난 전사 베오울프는 괴물 그렌델을 죽이고, 나아가 괴물의 어미(앤젤리나 졸리)까지 없애버린 공로로 왕국을 물려받는다. 베오울프가 흠모하던 왕비(로빈 라이트 펜)도, 베오울프를 의심하던 신하 운퍼스(존 말코비치)도 이 영웅적인 공로에 머리를 숙인다.

 영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 서사시에 현대의 시나리오 작가들은 본격적인 상상력을 삽입했다. 베오울프가 정말 괴물의 어미를 처단했을까. 그 어미의 정체가 앤젤리나 졸리 같은 육감적인 몸매의 마녀라면 유혹에 넘어가 뭔가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지 않았을까. 5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늙은 베오울프는 불멸의 전사로 추앙받으면서도 마음속에는 큰 허무감을 느낀다. 그 즈음, 불을 뿜는 용이 등장해 왕국을 공격한다. 과거의 밀약이 파기된 것일까. 베오울프는 다시 결전을 벌이기 위해 예전 마녀의 동굴을 찾아간다.

 이 영화의 둘째 구경거리를 꼽자면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낸 역동적인 액션이다. 베오울프가 그란델·용과 각각 벌이는 대결은 실사로 촬영했다면 쉽지 않았을 현란한 카메라 움직임을 통해 표현된다. 감독 저메키스는 특히 처음부터 3D, 즉 입체영화를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 (‘베오울프’는 일부극장에서 3D로 상영된다. 참고로 이 기사는 3D 시사회를 토대로 작성됐다). 평면이라면 큰 의미가 없었을 앵글도 3D에서는 효과가 뚜렷이 드러나고, 액션의 입체감은 한결 증폭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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